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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코앞에 두고 제1야당이 분당했다. 일여다야의 선거구도에서 여당이 35%의 지지율만으로도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선거제도의 탓이기도 한데, 막상 이런 사태가 출현하면 박근혜 정부의 온갖 실정에 정당성이 부여되는 정치적 효과가 발생하고 훨씬 나쁜 통치의 길을 연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 야권의 통합과 연합이 필요하지만 그에 대한 요구도 높지 않다. 제1야당에 대한 실망감이 얼마나 컸던가를 반증한다. 오히려 분당이 야권이 변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기대도 적지 않다. 냉정하게 보면 그 기대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사태가 이에 이른 만큼 일단 야당들에 지지자들과 유권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혁신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현재 야권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핵심적인 혁신작업은 무엇인가? 제1야당 내에서 그동안 혁신에 대한 많은 논의와 시도가 있었지만 이것이 오히려 분당사태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의미가 있는 혁신작업이 진행되기에는 선거까지 남은 시간도 부족하다. 답이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2004년체제’의 극복이 핵심목표가 되어야 한다.

현재 야권의 토대와 성격은 기본적으로 2000년과 2004년 총선을 거치며 형성되었다. 지지기반으로는 호남과 수도권의 개혁적 성향의 유권자가 결합되었고, 정당운영에서 상향식 의사결정방식과 참여가 강조되었다. 이는 현 야권의 개혁적 성향을 강화시키고 지지세력을 정치적으로 활성화시켰다는 점에서 한국정치에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렇지만 승리할 수 있다고 예상되었던 2012년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박근혜 정부의 탄생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한계도 명확하다.


내부에 변화의 요구와 새로운 사회적 역동성의 수용을 막는 기득권 구조가 형성돼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수권정당으로서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것이 이 체제의 가장 큰 문제였다. 2012년 선거과정에서 새로운 세력이 야권에 참여하고 선거를 역동적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정작 당내의 기득권 구조를 극복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지는 않았다.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도 당내 기득권 극복을 주요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무엇이 기득권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특정세력만의 문제는 아니다. 야권 내 기득권이라고 하면 호남이라는 지역기반에 안주한 정치인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수도권의 현역 의원들이나 지역위원장의 기득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구성과 성격도 2004년 이후 큰 변화가 없다. 당원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상향식 정당운영도 기득권 보호장치로 작동하게 되었다. 새로운 세력이 들어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호남이나 수도권이나 마찬가지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의당에도 유사한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이 체제로는 수권세력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야권 위기의 핵심이고, 이에 대한 의미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통합논의의 의미도 반감된다. 선거를 앞두고 야권에 대한 요구는 혁신을 통한 수권능력의 제고와 통합을 포함한 연합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지금으로서는 전자에 대한 요구가 더 큰 상황이다.

이 문제가 현재의 파괴적 방식으로만 해결될 이유는 없었다. 적절한 수선으로 수권정당으로서의 신뢰를 회복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그동안 혁신작업이 2004년체제의 극복을 명확한 목표로 삼지 않았다는 데 있다. 혁신의 이름 아래 소위 수도권 주류와 비주류가 서로를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하고 생존투쟁을 벌인 결과가 분당이다. 2004년체제 기득권의 두 측면이 혁신과정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한 측면만을 문제로 삼았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

꼴 보기 싫은 사람들과 갈라졌으니 우리끼리 힘을 모아 잘해보자는 식의 행동은 기득권끼리의 경쟁의 연속에 불과하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표적공천 운운이나 어설픈 영입경쟁도 출현한다. 이는 2004년체제의 부정적인 측면을 더 강화시키고 선거 참패를 면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분열되어 있는 야당들은 상대의 문제를 겨냥하기에 앞서 자신의 내부에 있는 2004년체제의 부정적인 측면을 극복하는 작업, 특히 기득권화된 각자의 정치적 기반에 대한 인적 혁신을 먼저 진행할 때만 변화를 원하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모을 수 있다. 더 큰 통합과 연합의 길도 그 속에서 열릴 것이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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