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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이면 청년은 사실상 법외 존재다. 대한민국의 1746개 법률 가운데 ‘청년’에 대한 법률은 딱 1개다. 15년 전에 처음 만들어진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이 유일하다. 그 법은 청년을 이렇게 정의한다. ‘청년이란 취업을 원하는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나이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법령에서 청년이 ‘취업을 원하는 사람’이다 보니 청년과 관련한 사업과 정책은 노동시장 진입 지원에 국한되어 왔다. 매년 수조원의 청년 예산이 오로지 ‘고용 촉진’에 투입되었지만, 상황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정권마다 늘어난 청년 일자리 예산은 ‘청년을 위한다’는 알리바이 구실에 머물렀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청년 정책의 설계와 시행에 있어 이전 정부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실제 노동시장 바깥 영역에서 제기되는 청년 문제에 대한 중앙정부의 대응 체계는 전무하다. 소득·주거·부채·교육·건강·문화 등 다기한 청년 문제를 다루고 해결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아직껏 청년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하지 못하고, 청년을 가리키는 나이마저 국가기관마다 다르다. 국가 차원의 기본계획도 세워진 적이 없다. 기본법의 부재에서 빚어진 현실이다. 서울시부터 시작해 올해 2월 인천을 끝으로 17개 광역자치단체에서 청년기본조례가 완료되었다. 지자체는 청년을 위한 기본조례를 완비한 마당에 정작 이 조례를 뒷받침할 법률이 없는 상황이다.

청년 대표성 측면에서 세계 최악인 ‘늙은 국회’의 청년 외면은 심각하다. 20대 국회 발의건수(2만484건), 처리건수(5985건)에서 청년 안건은 0.5%도 되지 않는다. 청년 관련 발의 안건은 60여건에 그치고, 그중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은 2건에 불과하다. 2023년까지 연장된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안과 국회 청년미래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이 전부다. 19대 국회에서는 노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법안이 청년 법안보다 4배 이상 많았다.

이런 풍토에서 청년기본법이 여야 합의로 성안된 것은 실로 사건이었다.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청년 의원들이 앞장서 7개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나 2년여 방치된 터다. 사장되어 있던 청년기본법을 불러낸 것은 결국 주체인 ‘청년’이었다. 1만명이 넘는 서명 등 직접 행동과 더불어 소수인 여야 청년 의원들의 노력이 어우러져 청년기본법을 살려냈다. 꼭 1년 전 국회 청년미래특위는 여야 합의로 기존 7개 법안을 통합 조정한 청년기본법을 마련, 발의했다. 대치로 날을 지새우는 20대 국회에서 희귀한 성취다.

청년기본법은 청년의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청년 문제 해결에 책임 있게 나서야 하는 법적 근거이다. 청년 규정을 19~34세로 확대하고, 고용·주거·복지·교육·문화 등 제 분야에 청년 정책을 도입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기본법이다.

하지만 국회 특위에서 여야 합의로 발의된 이 청년기본법은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1년이 넘도록 관련 상임위에서 논의도 없이 계류 중이다. 정원 10명을 채우지 못해 국회 연구단체도 꾸리지 못한 청년 의원들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청년단체들의 간절한 호소에도 메아리가 없다. 한때 20대 지지율 하락에 비상이 걸린 여권이 긴급회의까지 열어 ‘청년기본법 처리’를 다짐했지만 그뿐이다.

청년기본법 제정은 청년 문제 접근에서 ‘거대한 변화’의 초석이 될 것이다. ‘청년’은 나쁜 정치의 인질이 될 수 없다. 청년기본법에 대한 여야의 성찰과 다짐은 차고 넘친다.

자유한국당이 여당이던 2017년 2월 임시국회에서 행해진 정우택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다.

“청년들이 좌절하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습니까. … 청년기본법은 청년 정책을 국정의 핵심과제로 삼아 정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청년 정책들을 모아 총괄토록 하는 법입니다. 이를 통해 청년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고통이 되고 있는 고용, 주거, 학습 등에서 실질적 도움이 되기 위한 법입니다. 청년기본법은 조속히 통과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3년차, 지난 6월 임시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역설한다.

“무엇보다 국회는 청년의 꿈을 지켜야 합니다. 청년은 우리 사회의 미래이므로 청년의 삶이 무너지면 우리 사회의 미래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 우리도 실정에 맞게 청년들에게 안정적 주거와 양질의 직업교육, 일자리 제공을 통한 취업의 기회를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청년 정책의 기본 틀을 세우는 청년기본법 제정입니다.”

무슨 이유와 명분, 설명이 더 필요할까. 말로만 ‘청년은 미래의 희망’이어서는 안된다. “청년의 삶과 꿈의 기반이 될” 청년기본법 제정을 더는 미루지 말라.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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