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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이하 경칭 생략)가 연초 정계복귀를 선언한 직후다. 한 페이스북 페이지에 ‘누가 더 정치를 잘할 거라 생각하나?’라는 설문이 올라왔다. 선택지는 안철수와 ‘펭수’ 둘이다. 누구를 내세운들 ‘직통령’ 펭수를 당할 리야마는, 안철수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한때 청년들의 희망이었던 안철수로서는 실로 격세지감이다. 다분히 흥밋거리 설문이 눈길을 끈 건 펭수에 반사되는 안철수의 특성 때문이었을 게다. 펭수에게는 있지만 안철수에게는 부족한 게 있다. 메시지의 명료함과 구체성이다. 정치언어로 바꾸면 뚜렷한 노선과 원칙, 정체성이다. 리얼미터 여론조사(1월7일)에서 안철수의 정치노선을 ‘보수적’으로 인식하는 응답이 28%, ‘중도적’ 17%, ‘진보적’ 9.6%로 나타났다. 그리고 ‘모른다’는 응답이 45%에 달했다. 정치를 시작한 지 9년이 되었는데도 정체성과 노선마저 모호한 셈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경향신문DB

안철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현실정치 복귀를 알린 뒤 토론회 영상 메시지, 당원 신년 메시지, 신간 출간 등을 통해 “다시 정치를 시작한” 동기와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낡은 정치와 기득권에 대한 과감한 청산”을 기치로 리더십 교체, 정치 패러다임 전환, 정치권 세대교체를 정치개혁의 과제로 제시했다. 신간에서는 미래 3대 비전으로 행복한 국민, 공정한 사회, 일하는 정치를 내걸었다. 소중한 가치들이지만, 안철수만의 것이 보이지 않는다. ‘낡은 정치’ 대 ‘새정치’의 구도는 유효하지 않다. ‘새로움’은 더는 안철수의 무기가 아니다. 1년5개월 만에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비전을 펼치지만, 안철수의 길은 오리무중이다. 세 갈래도 모자라 ‘제4의 길’이 운위되는 지경이다. 낡은 정치와 기득권 청산을 누구(세력)와 어떤 노선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 하겠다는 것인지가 빠진 탓이다. 귀국하면 이것부터 ‘펭수의 화법’으로 제시해야 한다.

‘조국사태’와 ‘검찰정국’을 거치면서 양극단을 혐오하는 무당층과 중도 영역이 보다 견고해졌다. 극렬한 진영 대립은 지지층 결집과 더불어 정치 염증에 기반한 무당층과 중도층의 확대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한국갤럽의 신년 정기조사에서 무당층은 25%로 자유한국당 지지율(20%)보다 높다. 20대 무당파는 40%에 이르고, 중도층에서는 절반에 육박한다. 외형상으론 ‘안철수현상’을 불렀던 9년 전과 유사한 환경이다. “정치를 그만둘지 심각히 고민했다”는 안철수가 총선을 앞두고 등판한 것은 과거 실패한 ‘다당제시대 개혁’과 ‘기득권 양당의 벽’을 허물 토양이 조성되었다고 나름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집권 4년차에 치러지는 총선임에도 정권심판보다 야권심판론이 더 높다. ‘박근혜 탄핵’에 찬성한 중도보수가 한국당으로 돌아오지 않은 결과다. 보수통합은 그것을 반전시키기 위한 몸부림이지만, 유승민세력을 더해 단순히 덩치만 키운다고 쉽지 않다. ‘도로 새누리당’으론 무당파와 중도보수가 다 흡수되지 않는다. ‘안철수’라는 제3의 상징이 절실한 이유다. 하지만 안철수가 ‘통합호’에 몸을 싣는 순간, 안철수는 정치적으로 죽는다. 낡은 정치와 기득권 타파, 다당제 개혁과 중도 등 안철수정치의 명분과 자산을 죄다 전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안철수는 역시 ‘펭수의 화법’으로 보수통합에 대한 입장부터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

안철수의 정계복귀와 신당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당파와 중도층, 청년층에서 지지와 찬성 여론이 높은 것은 기존 정당이 아닌 새로운 당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다. 극단의 진영 대결 속에서 무당층은 커지고 중도층이 늘어나 다당제 요구는 있으나 이를 묶어낼 구심이 없던 상황이다. 무당파와 중도층의 다당제 동력을 수렴할 수 있느냐가 안철수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또 다른 제3당의 길은 분명 고난의 길이다. 기계적 중간과 ‘반문’ 깃발로는 십리도 못 간다. 양대 정당 사이에서 제3당으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설정해야 한다. 사회·경제 개혁 메시지가 명료해야 하고, 정치 목표가 무엇인지 보다 명징한 언어로 보여야 한다. 제3당이 철지난 정치세력, 정치인들의 도피처가 되어서는 희망이 없다. 결국 얼마나 대중성 있고 참신한 인물을 참여시키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안철수는 17개월 전 정치일선을 떠나면서 토로했다. “5년9개월 동안 정치를 하면서 다당제시대 개혁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기득권 양당 벽을 허물지는 못했다. 미흡한 점도 많았다. 그러나 제가 갔던 길이 올바른 길이라 믿고 있다.” 다시 다당제 개혁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안철수의 마지막 시간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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