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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4일 종영한 tvN 드라마 <슈룹>은 먼 옛날 권력암투가 도사리는 지엄한 궁궐에서, 어머니가 모진 바람과 비를 막아주는 우산처럼 자식을 지키고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임금을 사이에 두고 대비(김해숙)와 중전(김혜수)의 대립을 중심으로 극이 펼쳐진다. 이 드라마에는 다양한 모자 관계가 나온다. 임금의 어머니 대비, 세자와 왕자들의 어머니 중전과 여러 후궁들, 독살당한 태인 세자의 어머니 폐비 윤씨까지. 아들을 세자로 만들기 위해 왕실교육에 뛰어드는 엄마들의 치맛바람 속에서, 궁궐은 이들의 사랑과 집념, 욕망으로 넘쳐난다.

그중 대비는 아들을 수단으로 자신의 야망을 추구하는 데 독보적이다. 그녀는 자신의 자식을 왕으로 앉히기 위해 중전의 소생인 세자를 독살한다. 아들이 왕이 되고 나서도 끊임없이 조종하고 지배하려는 비정한 엄마이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대비는 자기 입맛에 맞는 손자를 세자로 책봉하려 들고, 중전과 사사건건 부딪친다. 결국, 그녀의 악행이 드러나고 임금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왜 대비는 아들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좇으려 하는가. 왜 그녀는 성인이 되고 결혼을 했는데도 그에게 집착하는가. 왜 그는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갈등하는가. 아들이 없는 나로서는 그들의 관계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가부장제 관점에서 살펴보니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모자 관계가 유난히 돈독하고 애틋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아들에 대한 맹목적인 어머니의 사랑과 소유욕을.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여자는 집 안에 갇히면서 자아실현을 할 수 없고, 가부장적인 남편에게 사랑과 존중을 받지 못하며, 모든 의사결정에서 배제된다. 이러한 억압적인 환경에서 자기소외를 겪는 불행한 여자는 권력자 남편의 뒤를 이을 젊은 남자 아들을 돌파구로 삼는다. 미성숙한 어머니는 그를 통해 자신의 결핍을 채우고, 자신의 희생을 보상받으려 한다. 그것은 아들에게 본인의 욕망을 투영하여 권력을 추구하거나 그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으로 발전한다. 이렇게 아들은 어머니의 욕망을 먹고 자라고, 기꺼이 부역자가 된다.

어느새 아들은 어머니의 젊은 연인이 되고 아버지의 역할을 떠맡아 그녀를 사랑한다. 착한 아들은 불쌍한 어머니의 인생과 희생을 책임지려 하고, 자신의 삶을 방치한다. 따라서 엄마의 욕망을 인생의 주인으로 받아들인 남자는 그 버거움에 숨을 쉴 수 없다. <슈룹>에서도 임금은 대비가 원하는 대로 왕이 되지만, 그녀의 끊임없는 요구와 그녀가 저지른 이복형의 독살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대비처럼 아들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여자들이 있다.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사교육 열풍에 뛰어드는 엄마들, 결혼한 자식을 놓아주지 않는 시어머니들, 아들을 핑계로 시가 어른들을 움직여 이익을 챙기려는 엄마들. 아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내던지는 헌신적인 엄마들까지도. 그녀들 모두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자신과 자식을 불행하게 할 뿐이다.

그러나 중전은 다르다. 그녀는 강하고 주체적이다. 남자에게 기대지 않고, 세자와 왕자를 지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궁궐을 뛰어다니며 직접 사건을 해결한다. 또한 그녀는 아들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지 않는다. 자기 마음대로 자식을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한 인격체로 받아들인다. 계성 대군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 사실이 자신을 위협해도, 그녀는 그의 정체성을 존중한다. 나아가, 중전은 세자빈, 후궁들과 연대하는 한편, 오갈 데 없는 힘없는 여자들의 거처를 마련하여 여성 공동체를 일군다. 그런 그녀를 나는 ‘페미니스트’라 부르고 싶다. 어머니가 페미니스트가 된다면, 스스로 행복할 수 있다면, 아들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윤선경 한국외국어대 영어통번역학부 교수>

 

 

연재 | 문화와 삶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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