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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달리 5월은 감정의 외출이 잦은 달이다. 어린이날에 이어 어버이날, 스승의날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짬을 내 우리는 인간의 유전자 혹은 인류의 지식이 대물림되는 현장을 애써 기억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노력은 다소 소모적인 데가 없지는 않겠지만 삶의 고명이자 향신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대물림은 ‘닮음’을 지속하는 과정이다. 자식은 부모를 닮게 마련이다. 닮았다곤 해도 자식은 부모와 꼭 같지는 않다. 바로 이 ‘같지 않음’ 때문에 지구가 생물학적으로 다양성을 띠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저 대물림의 주체는 세포다. 지구에 사는 75억이 넘는 인간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하나의 세포로부터 시작했다. 엄마로부터 하나, 아빠로부터 하나 이 두 개의 세포가 합쳐져 하나 된 세포인 수정란으로부터 인간은 발생을 시작한다. 한 개의 세포가 두 개가 되고 그것이 다시 네 개, 여덟 개… 이런 식으로 아홉 달이 지나야 비로소 하나의 인간이 탄생하게 된다.

늘 그렇지는 않지만 한 세포가 두 개가 될 때에는 세포가 가진 가구 일습을 두 배로 불린 다음 그것을 공평하게 반으로 나누어 갖는다. 그렇게 세포는 서로 닮는다. 이제 나눠 갖는 세포의 가구 면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대물림을 얘기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유전자는 고이고이 포개져 핵 안에 보관된다. 이 유전자에 담긴 정보를 풀어 단백질 노동자를 만드는 장소는 소포체다. 단백질을 만들 때 쓰이는 에너지는 주로 미토콘드리아가 공급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흔히 미토콘드리아를 세포 내 발전소로 비유한다. 그것 외에도 단백질을 가공하는 골지체와 생체 물질의 재활용을 담당하는 리소좀이 있다.

이런 가구를 하나도 구비하지 못한 채 오직 산소만 운반하는 적혈구가 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세포 대부분은 저런 세포 소기관 가재도구를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 인간은 부모로부터 세 종류의 유전 정보를 물려받는다. 엄마와 아빠로부터 물려받는 각각 한 가지의 유전체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토콘드리아도 자신만의 독특한 유전체를 가지고 당당하게 한몫 끼어든다. 바로 여기에 생물학의 가장 미묘한 수수께끼가 숨어있다. 미토콘드리아는 ‘불균등하게도’ 오직 모계를 통해서만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미토콘드리아는 난자를 통해서만 후대로 전달된다. 따라서 아들만 있는 엄마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체는 궁극적으로 진화의 무대에서 가뭇없이 사라진다.

왜 미토콘드리아가 문제가 될까? 그것은 인간이 물질과 에너지를 계속해서 공급해 주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체계이고 우리가 먹은 음식물은 최종적으로 미토콘드리아에서 화학적 에너지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전기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면 미토콘드리아의 위력을 능히 가늠할 수 있다. 앞에서 발전소에 비유했던 점을 떠올리면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미토콘드리아에서 평생 계속되는 에너지 생산 과정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미토콘드리아 안에 전자 고압선이 흐르기 때문이다. 피복이 벗겨진 채 운반되는 전기가 위험하듯 자리를 벗어난 미토콘드리아의 전자들은 세포 안팎의 단백질과 지질 혹은 유전자 가릴 것 없이 공격할 수 있다. 흔히 우리가 활성 산소라 부르는 것의 실체가 바로 궤도를 ‘벗어난’ 전자이다.

인간이 가진 수백 가지 세포 중 유일하게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난자 안에는 미토콘드리아가 가득 들어차 있다. 자신의 유전자와 함께 엄마는 그 미토콘드리아를 자식에게 물려준다. 한 달에 한 번씩 난소를 나온 난자는 나팔관이라 불리는 길을 따라 움직인다. 중도에서 수정이 이루어지고 나서도 자궁까지 오는 데 며칠이라는 시간이 더 걸린다. 머나먼 거리를 움직이지만 그동안 난자는 거의 에너지를 만들지 않는다. 앞에서 설명했듯 에너지를 만드는 동안 불가피하게 미토콘드리아 안에서 활성 산소가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자는 활성 산소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공격하여 태아에게 심각한 손상을 입힐 여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대물림 방식을 채택했다.

그렇다면 나팔관을 따라 난자를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그것은 바로 섬모(纖毛·cilia)라 불리는 또 다른 세포 소기관의 움직임에서 나온다. 숨 쉴 때 공기에 섞여 들어오는 미세먼지를 붙잡아 점액과 함께 몸 밖으로 내보내는 일을 담당하는 것이 기도(氣道) 세포의 섬모이다. 마찬가지로 나팔관에서도 갈대 이삭처럼 늘어선 섬모가 일사불란하게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난자를 이끌어 간다. 난자는 마치 가마에 탄 새색시처럼 거의 움직이지 않고 에너지 사용을 극소화하면서 행여나 미토콘드리아나 난자에 들어 있는 유전체가 다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렇게 금지옥엽처럼 고이 간수한 미토콘드리아를 물려받은 수정란은 아홉 달 동안 완결체로 자라난다. 분열하여 그 수를 늘릴 수 있기 때문에 난자에서 온 종잣돈 미토콘드리아는 태아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 안에서 쉼 없이 에너지를 만드는 평생 사업에 종사하게 된다. 이렇게 일사불란한 한 방향 섬모의 움직임에 기댄 난자의 미동 없음을 기리어 인간들은 기꺼이 어버이날을 만들어 냈다. 하늘 푸른 5월이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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