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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뜻하는 영어 ‘gift’는 독일어에서 기원한다. 일차적으로 독(毒)을 뜻하지만, ‘선물’이란 뜻도 함께 가진다. 잘못된 선물은 독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어원적으로 내포하는 셈이다. 어떤 선물을 하느냐에 따라 말 그대로 선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선물은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선물이란 본디 물품 자체뿐 아니라 받는 사람에게 전달되기까지 들어간 정성과 시간을 총칭하는 것일 터이다.

정치인들의 선물은 마음과 별개로 메시지가 담기게 마련이다. 왕의 선물 이야기로 조선왕조사를 재조명한 <국왕의 선물> 저자 심경호 교수는 “선물의 종류나 주는 방법을 보면 왕의 특징이나 시대상이 드러난다”고 했다. 현대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나 유력 정치인의 명절 선물에는 시대 상황은 물론 나름의 정치적 철학이 배어 있다. 선물을 고르는 선택부터 일종의 정치적 행위다.

2014년 추석 때 여야 지도부는 명절 선물로 세월호 참사 지역인 전남 진도군의 특산물을 택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사드 배치가 결정된 성주 참외를 추석 선물로 돌렸다. 선물의 메시지가 부각된 사례들이다. 지난해 조국 사태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경쟁적으로 배달된 ‘엿 상자’와 ‘꽃바구니’ 역시 선물의 정치학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추석 때 선물로 준비한 황태·멸치 세트를 불교계 큰스님 200여명에게 보내려다 “불가에 생물을 보내는 것은 결례”라는 지적에 막판 다기 세트로 교체했다. 반면교사 덕분인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 추석 선물로 잣·유가·육포 등을 고르면서 불교계에는 육포 대신 호두를 보냈다.

자유한국당이 황교안 대표 명의로 육포를 불교계에 설 선물로 보냈다가 뒤늦게 회수하는 소동을 벌였다. 한국당은 “배달 사고”라며 거듭 사과의 뜻을 밝혔으나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종교계 선물에마저 이토록 감수성과 고려가 없었다니. 하기야 늘 예상을 뛰어넘는 한국당의 일탈과 반상식을 감안할 때 “별로 놀랍지도 않다”. 다만 받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선물은 ‘독’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확인할 뿐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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