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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최근 주진모씨가 휴대폰에 저장된 정보를 범죄집단에 빼앗긴 뒤 협박을 당했다고 한다. 며칠 뒤 그가 지인과 주고받은 문자와 사진이 온라인에 광범위하게 퍼졌다. 협박의 피해자는 다수인 것으로 보도되었는데, 그중 유명 셰프의 이름도 알려졌다. 피해자들의 휴대폰에 저장된 정보들이 휴대폰 제조사의 클라우드에 연동되어 있었는데, 범죄집단이 비밀번호를 알아내 탈취해 갔다고 한다. 피해자들이 사용하는 다른 사이트의 비밀번호를 알아내 입력해 보았거나, 무작위적으로 각종 번호를 입력해 보는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범죄집단은 주진모씨가 협박에 응하지 않자, 탈취한 정보를 지인과 언론에 유포하고, 그래도 응하지 않자 온라인에 유포했다. 

디지털 세상의 명암을 보여준 이런 협박이 가능한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인간은 누구나 사생활이 있는데, 그것이 완전히 반듯하기는 어렵다. 둘째, 디지털 시대의 행적은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유출되고 재구성될 수 있다. 셋째, 평판의 넓이와 중요성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모든 사람의 사회적 생명이다. 범죄집단은 그것을 파고든다. 난처한 사생활이 집약된 디지털 정보를 탈취해 궁지에 모는 것이다. 디지털, 클라우드, 해커 같은 단어 때문에 새로운 시대의 세련된 범죄처럼 느껴지지만,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범죄다. 대상은 유명인만이 아니다. 뉴스의 초점이 되지 않을 뿐이지 남녀를 불문하고 많은 일반인들도 범죄자들이 불법적으로 촬영하거나 탈취한 자료로 고통받고 있다.

지금 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그의 선조 중에 아무도 후손을 잇는 것에 실패한 적이 없다. 수백만년 전의 아득한 옛날부터 단 한 번이라도 종족 보존에 실패했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얼마나 음란한 존재이겠는가. 성적인 요소는 삶의 본질적인 부분이면서도, 문명의 압력에 의해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마치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 결과로 우리 사생활의 가장 난감한 부분이 생겨난다. 사람의 성적 관념이나 행동은 천차만별이다. 단정할 수도 있고, 자유로울 수도 있으며, 기이할 수도 있다.    

이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이가 보기에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어도, 인간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유롭게 사생활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사적인 영역을 이 사회가 들추어내 처벌하고 모욕하지 않으리라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사생활이 다른 이에게 알려져도 떳떳한 경우라면 문제가 없고 협박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이런 저런 흠결이 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그에 대한 부적절한 표현 등을 문자로 주고받았다고 알려진 주진모씨를 옹호하자는 뜻은 아니다. 협박의 피해자이기는 하지만, 이미 드러난 이상 대중예술인으로서 불가피하게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사생활의 중요성 또한 간과되면 안된다. 게다가 스크린에 드러난 스타의 멋진 모습이 그의 전부가 아니듯이, 빼앗긴 자료로 드러난 그의 부족한 모습 또한 그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고문은 인간의 신체적 약점을 이용해 인간성을 말살하는 범죄다. 지금 벌어지는 범죄는 인간성의 어쩔 수 없는 부분을 이용해 협박을 한다는 점에서 고문과 다르지 않다. 아무리 죄를 지은 사람도 고문을 통해 자백을 강요받으면 안되듯이, 사생활이 아무리 못났어도 그것을 미끼로 협박을 받아서는 안된다. 

범죄의 대담성이나 광범위함 그리고 사용방법에 비추어보면, 이러한 범죄를 일삼는 집단의 상당수는 국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국제적인 공조를 통해 빠르고 철저한 수사에 나서고, 언론은 흥밋거리로 다루기보다는 극악한 범죄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좋겠다. 

빼앗긴 정보에는 연락처도 있을 것이다. 연락처를 두세 단계만 건너면 대중예술인은 물론 언론인, 정치인, 기업인을 비롯해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주요 인물의 연락처로 연결될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흠모하는 봉준호 감독의 전화번호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전화번호가 있다면 그것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클라우드에 접속하려고 쉬지 않고 시도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대중예술인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 재난이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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