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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혹은 †) 문양의 뜻은 심오하다. 고대인들은 卍을 태양의 빛, 혹은 우주의 순환 및 윤회를 형상화한 것으로 여겼다. 卍은 석가모니 이전부터 인도의 태양신인 비슈누의 상징 문양이었다. 비슈누의 가슴에 있는 소용돌이 모양의 털에서 발하는 서광을 가리켰다. 불교에서 卍은 좋은 징조를 가리키는 길상(吉祥)의 상징이었다. 석가모니의 가슴과 발바닥에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卍 문양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저 문양에 지나지 않았던 卍은 측천무후 치하인 693년 정식글자로 거듭났다. 卍자를 ‘길상과 만덕(萬德)이 모였다’는 뜻을 새겨 만(萬)으로 읽은 것이다. 부처님은 물론 중생의 마음속에 잠재한 불성(佛性)을 상징하고, 상서로운 조짐을 안겨주는 글자였다.

이렇게 동양에서는 만덕(萬德)의 조짐인 卍을 아돌프 히틀러는 나치 독일의 상징 문양으로 삼았다. 1920년 卍의 변형인 †를 나치당의 상징 문양으로 선포한 것이다. 붉은 가장자리와 하얀 원 안에 새긴 까만색의 † 문양은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붉은색은 사회의식을, 흰색은 민족주의를, †는 아리안의 투쟁이 승리한다는 사명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갈고리(Haken) 십자가(Kreuz)’라 해서 하켄크로이츠란 이름이 붙었다. 일각에서는 히틀러가 기원후 1세기 무렵 초기 게르만족이 사용한 룬(Rune) 문자의 한 종류였던 †를 따왔다는 설을 제기했다. †(혹은 卍) 문양은 바로 아리아족이 기원전 2000~1500년 사이 세운 고대 인도에서 번성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독일의 게르만이 아리안의 순수혈통을 이어가는 단 하나의 민족임을 강조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치가 패망하자 †는 파시즘과 홀로코스트, 공포를 상징하는 금기 문양이 되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둔 일본에서 “사찰을 가리키는 卍 문양이 ‘나치의 †’를 연상시키니 관광객용 지도에서 빼자”는 국립지리조사연구원의 제안이 논쟁을 일으켰다. 서양인들이 오해할까봐 그런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가짜가 원조를 몰아내는 격이다. SNS 사용자가 안성맞춤의 댓글을 달았다. “테러리스트가 유니온잭(영국국기)을 걸면 영국은 국기를 바꿔야 하는가.”


이기환 논설위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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