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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남극의 온실

opinionX 2016. 2. 16. 21:00

영화 <마션>에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는 생존을 위해 감자를 키운다. 그는 온실을 만든 뒤 사람 배설물을 섞은 화성 흙 속에 감자를 잘라 심어 수확하는 데 성공한다. 와트니는 “어딘가에서 일단 작물을 기른다면, 공식적으로 그곳을 식민지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식물 재배조건만 놓고 본다면 남극의 환경도 화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평균기온이 영하 30도 안팎으로 감기 바이러스조차 생존할 수 없다. 토양에는 식물이 섭취할 양분이 거의 없는 데다 연중 절반 이상은 얼음에 덮여 있다. 식물이라고는 여름철에 잠깐 이끼와 잔디류를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한국이 남극에 건설한 연구시설인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 대원들은 일년 내내 신선한 채소를 먹는다. 와트니가 화성에 만든 것 못지않은 온실을 보유한 덕분이다. 컨테이너 박스 온실에서는 상추와 고추, 토마토, 치커리 등 채소가 자란다. 남극 생태계 교란을 우려해 한국에서 흙을 가져가지 않고 인공토양에 한국산 씨를 뿌렸다. 지구상에서 사람이 더럽히지 않은 유일한 공간인 남극에서는 배설물은 물론이고 뱉은 침까지 오염물로 간주돼 회수해야 한다. 겨울이면 해가 뜨지 않는 극야를 감안해 LED 조명으로 햇빛을 대신하고, 바닷물을 정수한 물을 공급한다. 화성에서 감자를 재배한 이는 식물학자였지만 남극에서는 조리사와 설비기사, 연구원 등이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채소를 돌본다.


빙하를 헤치고 남극 세종기지 월동대원들이 아라온호가 싣고 온 식자재·연구장비 등 보급품을 육상으로 옮기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_해양수산부

남극 기지 대원들은 해마다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쳐 1년씩 근무한다. 16명 안팎인 대원 중 연구원은 4~5명이고, 10여명은 기계·전기·중장비·통신·의료·조리 등 지원업무를 맡는다. 각 분야 경력이 5년 이상으로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데,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이른다. 급여는 국내보다 2.5배가량 많다. 남극에서는 사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혹한에다 극야·백야가 반복되고, 외부와 단절된 극한의 환경을 이겨내야 한다.

남극 기지를 다녀온 대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극지인의 밤’ 행사가 17일 열린다. 1988년 세종기지 건설 이후 28년 만에 처음이니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들의 도전과 열정은 화성에서 살아남은 영화 주인공 못지않다.


안호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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