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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하늘의 푸른 솔과 대지에 일어선 높은 산을! (중략) 우리 조선사회에 개개의 운동단체가 없음은 아니나 이를 후원하며 장려하여 조선인민의 생명을 원숙창달하는 사회적 통일적 기관이 없음은 실로 유감이고 또한 민족의 수치로다. 우리는 이에 뜻한 바 있어 조선체육회를 발기하노니 조선사회의 동지들은 모두 와서 찬양할진저.’
1920년 7월13일 오후 8시 서울 인사동 중앙예배당에서 발족한 조선체육회의 창립취지서다. 1919년 2월 조선총독부 산하 어용단체로 조선체육협회가 출범한 데 반발해 1년여 뒤 친일인사를 배제한 사회 각계 지도층 인사 96명이 모여 만든 자주적 체육단체가 현 대한체육회의 전신인 조선체육회다. 창립 이념은 그래서 ‘건민’과 ‘저항’이다.
스포츠를 통해 민족 자긍심을 키우고, 항일투쟁을 펼치던 조선체육회는 1938년 7월4일 조선체육협회에 강제 통합돼 해산되고 만다. 조선체육회는 1945년 광복 후 민족지도자 여운형 회장을 중심으로 부활한 뒤 1948년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부 수립 혼란기에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조선체육회는 정치적 불편부당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성명으로 결기를 토하기도 했다.
대한체육회 기획실장 정성환 _경향DB
대한체육회는 이달 말 두 번째 ‘통합’을 앞두고 있다. 1991년 대한체육회에서 떨어져나가 정치적 비호 속에 성장한 국민생활체육회와 25년 만에 다시 합치게 된 것이다. 통합을 못 박은 법정시한에 따라 지난 7일 통합체육회 발기인대회가 열렸고, 27일이면 새 출범을 한다. 두 단체가 통합하니 ‘한국체육회’ ‘대한민국체육회’ 등 새 이름을 짓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명칭은 격론 끝에 ‘대한체육회’를 유지하기로 했다. 조선체육회로부터 비롯된 100년의 역사와 전통, 얼이 온전히 담긴 이름을 지키자는 체육인들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명칭은 겨우 지켰지만 새 대한체육회가 자율성과 독립성도 지켜나갈 수 있을까. 그게 벌써부터 쉽지 않아 보인다. 대한체육회가 정부가 주도한 체육단체 통합안에 그토록 저항했던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이었다.
김경호 선임기자 jero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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