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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이세돌 대 알파고 대국을 보고
충격, 이세돌 불계패! 이렇게 느낌표를 붙여야 할 만한 사건이다. 드디어 기계가 인간을 압도하는 세상이 오는 것인가? 그러나 이를 ‘기계 대 인간’ ‘인류 문명의 위기’ 등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피상적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이러한 묵시록적 상황이나 이야기를 반복하여 만들어내면서 그 위기를 헤쳐왔다.
13세기 이탈리아의 단테가 쓴 <신곡>은 존재하지 않는 지옥을 상상하고 그 아래로 순례하는 인간을 통해 중세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17세기 영국의 밀턴, 그의 <실낙원>은 또 어떠한가? 신의 형벌, 추락한 천사, 지옥에서 복수의 성채를 쌓는 사탄. 실물로 존재하지 않으나 상상 속에서 가능한 이 묵시록을 통하여 밀턴은 당대의 황폐한 상황을 그렸다.
<터미네이터2>나 <매트릭스> 같은 영화 또한 표면적으로는 기계가 장악한 근미래의 암울한 상황을 그리고 있지만 그 속에는 오늘날의 인류가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와 상황들을 투영한 것이다.
인공지능의 도래는 우리 삶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다. 그런데 이를 ‘기계의 지배’라는 식으로 묵시록적 기술주의로 봐서는 곤란하다. 대부분의 경우 그 기술들은 우리에게 편리와 즐거움을 제공할 것이다. 구글은 알파고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래 기술에 투자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인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개는 실제의 개와 다를 바 없이 달린다. 이 로봇 개를 마주한 실제 강아지가 컹컹 짖자 로봇 개는 무슨 까닭인지 호응하며 몸을 떠는 동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기술은 가까운 장래에 일상생활의 편리와 정보 처리 및 관계 강화에 기여할 것이다. 이 글을 읽을 독자 중에 상당수는 머지않아 로봇 개와 산책을 하고 대화도 할 것이다. 그 개는 아무 데나 용변을 보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택배를 대신 받을 것이다.
이날 대국의 하이라이트는 백102(붉은 원).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이 좌중앙에 큰 집을 만들며 형세를 유리하게 이끌자 우변 흑진에 침입, 우상귀의 흑 3점과 바꿔치기에 성공하면서 단숨에 형세를 뒤집었다._한국기원 제공
문제는 이 로봇 개를 전쟁이나 시위 진압이나 인간의 작업장에 배치하게 될 때이다.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그 기계를 지배한 인간이 나머지 인간을 보다 강력하게 지배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그 점이다. 인간은 실수투성이에다 미묘한 감정의 동물이다. 왜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는지 인간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한다. 이게 인간의 한계지만 동시에 이 점이 인간의 장점이다.
연민과 애환, 슬픔과 사랑. 여기서 두 가지 뚜렷한 힘이 발생하여 인류를 여기까지 오게 하였다. 고결한 감정 상태, 즉 휴머니즘과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방식, 즉 민주주의다. 이 휴머니즘과 민주주의가 미래에도 작동하게 하는 것, 그것이 묵시적 상황을 이겨내는 힘이다.
이세돌이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 원컨대 나머지 판을 다 이기기를 바란다. 그러나 졌다고 해서 기계의 승리와 지배가 예고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렇듯이 가까운 미래에도 이러한 기계를 실제로 통제하는 힘이 무엇인가, 그것이 중요하다. 휴머니즘과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강력한 권력과 자본이 이를 통제할 때, 그때가 비극의 시작이다.
우리는 알파고의 승리에 전율을 느끼면서 동시에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강력한 요청에도 굴하지 않는 애플사의 최고경영자 팀 쿡에게 성원을 보내고 있다. 여기가 핵심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지배한 국가와 자본의 지배다.
미래의 묵시적 상황은 알파고나 로봇 개가 아니라 이를 실제로 지배하는 권력이다. 이를 경계하여 오늘의 상황에서 휴머니즘과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이 미래의 비극을 막거나 최소한 지연시킨다.
만약 우리가 기계 통제에 의한 권력 지배를 이겨내거나 지연시킬 수 있다면 미래의 후손들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때 가서, 알파고 버전 7.0에 연패하여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우리가 단테와 밀턴을 기억하듯이, 후손들은 휴머니즘과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한 우리를 기억할 것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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