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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멕시코를 가르는 리오그란데 강가에서 숨진 한 부녀가 지구촌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 강을 건너다 변을 당한 엘살바도르 난민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25)와 딸 발레리아(2)가 그들이다. 멕시코 기자의 카메라에 잡힌 이 부녀의 모습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아빠는 마지막 순간까지 딸의 머리를 자신의 티셔츠 안에 넣어 감싸고, 딸 역시 필사적으로 아빠의 목을 팔로 감고 있었다. 4년 전 지중해를 건너다 배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숨진 3살짜리 시리아 난민 아기 아일란 쿠르디를 연상시킨다. 당시 터키 관광지 해안가 모래밭에 천진난만한 자세로 엎드려 있는 쿠르디의 모습에 전 세계인이 울었다. 

지난해 중남미 국가 난민(캐러밴)들이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로 몰린 이후 이들 부녀의 비극은 일상이 되고 있다. 전날에도 리오그란데강에서 어린아이 3명 등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한 해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난민이 283명에 이른다. 여기에 멕시코는 이달 들어 갑자기 이민자 단속을 크게 강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가 국경에서 난민을 철저히 막지 않으면 멕시코산 수입품에 최고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협박한 탓이다. 최근에는 미국 남부의 이민자 수용시설에서 아이들이 수주일째 씻지도 못하는 비인도적 실태까지 드러났다. 미 언론들이 “IS와 해적들도 치약과 비누는 줬다”고 자국의 처사를 비난하고 있다. 요행히 국경을 건너 미국에 안착한다 해도 난민들의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쿠르디 사후 큰 반향에도 불구하고 난민 문제 해결은 요원하기만 하다. 유럽 각국에서는 오히려 반이민·난민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라미레스 부녀의 비극을 두고 ‘난민을 만든 위정자를 탓해야지 왜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미국을 비난하느냐’는 사람들이 있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난민에 공감하지 못하고 실리만을 들이대는 것은 비인도적이다. 트럼프는 반이민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4월 불법 이민자에 미온적으로 대응한다고 국토안보부 장관을 경질하더니 세관국경보호국 국장까지 강성인물로 교체한다고 한다. 이민으로 성장한 미국의 역주행이 끝도 없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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