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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여적]문재인의 기념시계

opinionX 2017. 6. 22. 10:53

청와대를 방문한 사람들이 대통령을 직접 보는 것 말고 부수적으로 얻는 게 기념품용 ‘대통령 손목시계’다.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문양과 친필 사인이 새겨진 손목시계가 처음 제작된 것은 박정희 정권 때다. 1978년 12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참가한 간접투표 방식을 통해 제9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데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여론무마용 손목시계’를 만들어 돌린 것이다. 전두환 정권 때도 기념시계를 만들었는데 스위스 제품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시계 제작기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 제작된 ‘대도무문(大道無門·옳은 길을 가는 데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 시계’는 시민들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렸다. 앞면엔 한자 이름(金泳三)을, 뒷면엔 좌우명 ‘大道無門’을 새긴 이 시계는 다른 숫자는 없고 ‘0’과 ‘3’만 크게 쓰여 있어 ‘영삼(03)시계’로도 불렸다. ‘대도무문’ 시계는 1992년 대선 때 대량 유포돼 금권선거 논란이 거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념시계 뒷면에는 ‘남북정상회담 첫돌과 광복 56주년을 기념하여’ 등과 같은 글귀를 새긴 게 특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념시계 뒷면엔 ‘원칙과 신뢰, 새로운 대한민국’이란 문구가 새겨졌고, 케이스엔 권양숙 여사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월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의원들과 지역 당협위원장들에게 대통령 기념시계가 배포돼 논란이 일었다. 당시 야당은 선거법 위반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지난해 12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자마자 봉황 문양이 없는 기념시계를 제작해 “‘대통령 놀이’에 빠져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청와대가 다음달 초까지 문재인 대통령 기념시계 제작을 마칠 계획이라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다른 기념품을 찾아봤지만 제작비가 저렴하고 만족도가 높은 선물로는 시계만 한 게 없다는 판단에 따라 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안이 없는 한 대통령 기념시계는 앞으로도 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대통령 기념시계를 어떻게 차별성 있게 디자인할지 고민스러울 것이다. 기억에 남게 하는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국정운영의 성공이다. 최고의 디자인은 바로 최고의 업적이기 때문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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