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가 말해주듯, 직립보행은 인간 고유의 특성이다. 펭귄이나 캥거루처럼 보행하는 동물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보행은 걷기보다는 깡충깡충 뛰는 것에 가깝다. 균형을 잡기 위해 꼬리를 쓰는 점도 인간과 다르다. 보행은 한 발 한 발 내딛는 행위다. 다른 동물은 이 위태로운 보행을 할 수 없다. 보행은 인간의 특권이다.

과학자들이 인간 보행을 탐구한 지는 오래됐지만, 철학적 연구는 늦게 이뤄졌다. 루소는 걷기를 철학의 대상으로 삼은 첫 철학자였다. 루소는 선사시대 보행자의 후예를 자처한 산책자였다. 그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철학적 보행을 다룬 최초의 책이다. 키르케고르 역시 보행을 이야기한 철학자였다. 그는 걸으면서 인간을 연구할 장소로 도시(코펜하겐)를 선택했다. 그는 시골에서 식물학자가 식물을 채집하듯, 도시를 걸으면서 인간을 탐구했다. 키르케고르의 일기는 보행에 대한 철학적 사유물이다. 현상학자 후설은 보행을 철학의 주제로 삼았다. 그에게 보행은 자아와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이다.(리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

낡은 고가도로에서 녹지로 조성된 서울역 앞 ‘서울로 7017’ 개장 1주년인 20일 이곳을 찾은 시민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지난해 5월20일 개장한 서울로를 찾은 방문객 수는 1000만명을 넘어섰다. 연합뉴스

가장 인간적인 행위인 걷기는 인간을 탐구하는 인문학과 잘 어울린다. 최근 걷기가 인문학의 테마로 부상한 이유다. ‘걷기’서적, 보행자 모임, 인문답사가 줄을 잇는다. 문제는 도시에서의 보행이다. 도시와 문명은 보행의 훼방꾼이다. 빌딩, 지하도, 고가도로가 거미줄처럼 얽힌 도심에서 자유로운 보행은 어렵다. 스마트폰과 네온사인은 발걸음을 붙잡는다. 서울은 더 이상 “밤늦게까지 헤맬 거리와 들를 처소가 있었던”(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구보씨의 그곳이 아니다.

서울역 앞 낡은 고가도로에 조성된 보행공간 ‘서울로 7017’이 오는 20일로 개장 2주년을 맞는다. 지금까지 하루 2만명꼴인 1670만명이 찾았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미국 시사주간 ‘타임’에 의해 ‘지금 당장 경험해봐야 할 여행지 100선’에 뽑힐 정도로 서울의 명소가 됐다. ‘서울로 7017’은 1㎞의 짧은 콘크리트 도로로 걷기를 만끽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보행도시 서울’의 가능성은 보여주었다. ‘서울로 7017’이 1000만 구보씨들이 횡보하는 서울 거리를 만드는 신호탄이 되길 기대해 본다.

<조운찬 논설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