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

[여적]슈퍼전파자

opinionX 2020. 2. 20. 10:17

31번째 확진자가 다닌 대구 남구 신천지 교회 건물 앞으로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이 교회는 신도 15명이 한꺼번에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슈퍼 전파’가 일어난 장소가 됐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미국 여성 메리 맬런은 상류층 가정에서 일하던 요리사였다. 1907년 어느 날 그녀가 일하던 집에서 장티푸스 환자가 무더기로 발생했다. 사건을 조사하던 의사는 그녀가 이전에 일했던 곳에서도 병이 발생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는 1900년부터 7년 동안 51명을 감염시켰다. 무증상 보균자였던 본인은 멀쩡했다. 그녀의 신상은 공개됐고, 마녀처럼 묘사됐다. 그녀는 슈퍼전파자로 지목되면서 30년간 격리된 채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장티푸스 메리’로 역사에 남아 있다.

중국에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SARS)이 발생했을 때다. 2003년 2월 광둥성 의사였던 리우 지안룬은 사스를 치료하다가 감염됐다. 사스 증상을 보였으나 결혼식 참석차 홍콩에 갔다. 그는 한 호텔에 머물면서 투숙객 16명을 전염시켰다. 이들이 캐나다, 싱가포르, 타이완, 베트남으로 바이러스를 실어 나르면서 사스는 국제적인 전염병이 됐다.

2015년 질병관리본부(질본)의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 보고서’에는 감염자 역학조사 내용이 나온다. 보고서에는 메르스 슈퍼전파자가 5명으로 기록돼 있다. 슈퍼전파자는 2차 감염을 많이 일으킨 사람이다. 질본은 4명 이상 전파자로 정의했다. 가장 많이 퍼뜨린 슈퍼전파자는 접촉자 594명 가운데 85명에게 메르스 바이러스를 전염시켰다. 한국에 메르스를 들여온 첫 환자도 28명에게 바이러스를 옮겼다. 5명의 슈퍼전파자는 확진자 186명 가운데 153명에게 전염시켰다.

19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왔다. 20명 늘어 국내에서 총 5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들 가운데 15명은 ‘31번 째 확진자’와 관련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코로나19의 국내 첫 슈퍼전파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는 의료진의 코로나19 진단검사 권유를 두 차례나 거부했다. 만일 그가 권유를 받아들였다면 슈퍼전파자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감염자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다. 자기 감염 사실을 모른 채 남에게 퍼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감염자라는 이유로 낙인을 찍어선 안될 일이다. 그렇다고 공동체 구성원의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본 규범을 지키는 것은 구성원의 의무다.

<박종성 논설위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