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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우체통.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내가 나에게


오늘은 내가 나에게 

칭찬도 하고 위로도 하며

같이 놀아주려 한다

순간마다 사랑하는 노력으로 

수고 많이 했다고 웃어주고 싶다

계속 잘하라고 힘을 내라고

거울 앞에서 내가 나를 안아준다


- 시집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에서




내가 나에게 Ⅱ


오늘은 오랜만에 

내가 나에게 푸른 엽서를 쓴다

어서 일어나 섬들이 많은 바다로 가자고

파도 아래 숨쉬는 

고요한 깊이 고요한 차가움이 

마침내는 따뜻하게 건네오는 

하나의 노래를 듣기 위해

끝까지 기다리자고 한다

이젠 사랑할 준비가 되었냐고

만날 적마다 눈빛으로 

내게 묻는 갈매기에게

오늘은 이렇게 말해야지

파도를 보면 자꾸 기침이 나온다고

수평선을 향해서 일어서는 희망이

나를 자꾸 재촉해서 숨이 차다고-


- 시집 <작은 위로>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 수녀에게 이 시를 읽어주니 요즘의 자기 마음과 같다고 그동안 자신을 좀 더 존중하지 못하고 사랑해주지 않은 시간들이 떠오른다고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새해가 되어 좀 더 깊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좋은 결심도 세우려니 우선 제가 저 자신과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하는 일에도 사랑하는 일에도 남보다 뒤처진 자신을 발견하고 의기소침해질 때, 주변에서 일어나는 안 좋은 일들에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무력감에 우울해질 때, 어쩌다 한번씩 방송이나 신문에서 인터뷰한 내용에 누군가 인신공격적인 악플을 달아 상심할 때, 수도자의 신분에 맞지 않게 밖으로 이름이 나서 듣게 되는 이런저런 부정적인 말들에 변명도 못해서 외로움이 싹트려고 할 때, 본인이 수첩에 암호처럼 메모해 둔 내용을 도무지 풀지 못해서 쇠퇴한 기억력에 스스로 답답하고 실망이 될 때, 앉았다 일어서는 단순한 움직임조차 뜻대로 되지 않아 몸의 한계를 느낄 때 사는 일이 문득 힘겹고 자존감도 떨어져 앞이 캄캄하게 느껴질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답답한 어둠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지 말고 잠시 저 자신을 위로하고 달래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적어 본 하나의 편지이자 고백서로 ‘내가 나에게’라는 시를 썼습니다. 글방에 찾아오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지나치게 자신을 과소평가하거나 자신의 어떤 실수나 결점에 대해 낙담한 나머지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다른 사람을 인내하는 일도 쉬운 게 아니지만 마음에 안 들어 때로는 낯설기까지 한 자신의 모습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일이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출렁이는 파도와 수평선을 바라보며 저 밑바닥에 누워 숨을 쉬지 못했던 죽은 희망을 이제 다시 살아있는 희망으로 일으켜 세웁니다. ‘이제는 기다릴 준비가 되어있지?’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다시 한 해의 길을 가려 합니다. 너무 바쁜 일에 밀려 외롭지 않도록 저 자신에게 시간을 좀 더 많이 주고 싶습니다. 잘한 일은 칭찬도 해 주고 잘못한 일은 나무라기도 하면서 더 친한 동무가 되려 합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에게 따뜻한 위로의 손편지도 한번 써보세요!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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