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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화 논설위원


개그맨의 원조인 전유성은 20여년 전 스승의 날 기념 라디오 방송에서 “예부터 ‘스승은 임금·어버이와 같으므로 감히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스승을 너무 존경하던 나는 선생님의 그림자는 물론 선생님이 계시는 학교 근처도 갈 수 없었다”며 청취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그러나 요즘 전유성의 ‘주옥같은 멘트’처럼 스승을 존경과 사랑으로 따르는 제자가 얼마나 될까. 교사들의 손에서 회초리가 사라진 후 스승을 폭행하는 제자들까지 있다.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을 깨우면 교사가 욕을 먹는다. 아이를 벌하고 싶지만 뒤통수라도 한대 쳤다간 학생인권을 무시한 체벌교사로 몰린다. 학생들이 체벌현장을 인터넷 동영상에 올리면 해당 교사는 그날로 표적이 된다. 별 탈 없이 교사직을 유지하려면 ‘봐도 못 본 체’ 정신으로 견뎌야 한다는 결론이다. 반대로 학생이 교사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가혹한 체벌과 성희롱을 견뎌야 하는 학생에겐 스승의 날이 가당치도 않을 터이다.

 

한성대에서 학생들이 스승의날을 앞두고 교수들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고 있다. l 출처:경향DB

엊그제 발표된 스승의 날 선물 설문결과를 보면 가장 선물하고 싶은 스승으로 응답자의 40%가 학원강사를 꼽았다. 그 다음은 학교 담임교사가 23%, 인생선배 16%, 어린이집 교사 12%, ‘선물하고 싶은 대상자가 없다’는 응답도 6%였다. ‘교직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답은 2009년 55.3%에서 올해 79.3%로 늘었다. 사교육에 비중을 두는 현실, 촌지 근절을 위해 스승의 날에 휴교하는 학교 풍경 등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다.

스승의 날은 교권 존중과 스승 공경을 위해 지정됐다. 우리나라는 1963년 5월24일 ‘은사의 날’을 시작으로 1965년 세종대왕의 탄신일이 ‘스승의 날’로 정해졌다. 대만은 공자 탄신일인 9월28일, 인도는 라다크리슈난 대통령 생일인 9월5일, 아르헨티나는 정치가 도밍고 파우스티노 사르미엔토의 기일인 9월11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다. 각 나라마다 본받을 만한 위인을 스승으로 기리며 국가 정신을 바로잡는 길잡이로 삼고 있다.

오늘 스승의 날 이 땅에선 존경받는 스승들이 얼마나 되는지 자문해본다. ‘가르쳐 이끌어주는’ 스승과 ‘가르침을 받는’ 제자의 인격이 동시에 존중될 때 균형의 사회가 이뤄진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제자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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