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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여적]슬라맛 쁘탕

opinionX 2019. 3. 21. 14:06

“정말 감사드린다. 팀 애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 초 열린 미국 노동정책자문위원회에서 애플 최고경영자(CEO)에게 “애플이 미국 내 투자를 많이 했다”며 한 말이다. 그런데 애플의 CEO는 팀 쿡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실수는 처음이 아니다. 얼마 전 백악관 안보회의에서는 아시아국가 부탄을 ‘부톤’으로, 네팔을 ‘니플’로 잘못 불렀다. 유럽 테러를 이야기하면서 테러가 발생하지도 않은 스웨덴을 언급하기도 했다.

말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총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태평양 전쟁때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가 당시 스즈키 간타로 일본 총리가 ‘모쿠사쓰(默殺·묵살)’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무조건 항복과 완전한 파멸 중 하나를 택하라”는 미군의 통지에 “당분간 보류한다”는 뜻으로 말한다는 것이 “무시하겠다”로 이해되면서 원폭투하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호주 방문 때, 맬컴 턴불 당시 호주 총리와 루시 여사에게 “이렇게 환대해주셔서 당신과 당신의 맛있어 보이는(delicious) 부인께 감사드린다”고 영어로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프랑스어로 ‘매력적’이라는 뜻을 가진 델리시외즈(delicieuse)를 딜리셔스(delicious)로 혼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도 2016년 연설에서 “스스로 발전시키고(라즈비바츠) 열심히 일하라”고 말하려던 것을 “옷을 벗고(라즈디바츠) 땀 흘릴 때까지 일하라”고 잘못 전달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국빈 방문에서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에게 ‘슬라맛 소르(selamat sore·안녕하세요)’라고 인도네시아어로 인사하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말레이시아어 인사말 ‘슬라맛 쁘탕(Selamat petang)’을 잘못 말한 것이다. 두 나라는 전통적인 ‘앙숙’ 관계여서 모하맛 총리는 물론 말레이시아 국민들이 불쾌했을 법하다.

청와대 측은 “현지어 인사말 작성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다”고 했다.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외교 참사’다. ‘작은 구멍에도 댐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구를 청와대는 새겨들어야 한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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