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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이 해마다 선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에 공명지조(共命之鳥)가 뽑혔다. 공명조는 불교 우화에 등장하는 한 몸에 머리가 두 개인 새로, 한쪽 머리가 혼자 늘 맛있는 열매를 챙겨 먹자 질투심을 느낀 나머지 하나의 머리가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고 결국 죽고 말았다고 한다. 경쟁 관계에 있는 두 개체가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눈앞의 자기 이익만 좇다가는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과 검찰의 수사 태도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서초동과 광화문 집회세력 등으로 양분된 것을 걱정한 결과로 보인다. 

특이한 것은 올해 추천된 상위 5개 사자성어 간 경쟁이 유독 치열했다는 점이다. ‘가짜와 진짜가 마구 뒤섞여 있다’는 어목혼주(魚目混珠·29%)도 1위와 별 차이 없는 지지를 받았다. 뒤이어 3·4위를 차지한 ‘뿌리가 많이 내리고 마디가 얽혀 있다’는 뜻의 반근착절(盤根錯節·27%)과 ‘어려움을 알면서도 행동한다’는 지난이행(知難而行·26%)도 마찬가지다. ‘오직 자신의 길을 고집한다’는 뜻의 독행기시(獨行其是·25%)에도 다수가 공감했다. 이들 고사성어를 종합하면, 우선 정부가 추진하는 적폐청산과 개혁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양분된 정치권과 사회가 서로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시민들이 혼란스러워한다고 봤다.

2017년 파사현정(破邪顯正·그릇된 것을 깨뜨려 바른 것을 드러낸다)에서 지난해 임중도원(任重道遠·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을 지나 공명지조가 나온 뜻을 여권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 걸었던 기대가 2년 반 만에 실망으로 바뀌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도 여지는 있다. 어목혼주에는 진짜와 가짜를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달라는 요청이 들어 있다. 반근착절, 지난이행 등에서는 ‘방법에는 동의하지 못해도 개혁에는 공감한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조국 전 장관을 고집한 것은 잘못됐지만 검찰개혁이라는 대의에는 동의하는 것이다. 교수신문은 ‘독행기시’에 대해 “군자는 곧고 바르지만 늘 자기 의견만 옳다고 고집하지 않는다”는 <논어> 구절을 강조했다. 총선의 해인 내년을 위해 모두가 새겨들어야 한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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