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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테마파크 중에 직업 체험을 소재로 하는 테마파크는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에 두 곳 정도 있다. 아이 어릴 때 더러 가보았는데, 갈 때마다 늘 현실세계와 놀랍게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그곳은 일하는 즐거움보다 취업의 고단함을 깨닫게 한다. 1회에 많아야 대여섯 명만 입장이 가능한 체험시설은 늘 대기를 해야 한다. 그것도 오래 대기해야 한다. 체험시설 바깥에서 배회하는 아이들은 일종의 실직 상태인 셈인데, 비싼 입장료 내고 들어와서 기다리는 게 일이라니, 비싼 등록금 내고 졸업해서 청년실업에 봉착한 오늘날의 세태를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취업하려면 인기 직종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원하는 바를 이루겠다는 소신과 주관 따위를 여기에서 부렸다가는 남들 다섯 곳 체험할 때, 두 곳만 체험하고 돌아가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이곳에서도 부모의 능력과 정보력, 기동력은 아이의 취업가능성(체험시설 이용)과 비례한다. 아이가 체험하는 동안 가장 빨리, 가장 짧은 시간에 이동할 수 있는 곳을 부모가 찾아낼 수 있을 때, 아이는 더 많은 체험을 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월급에 비해 소비 물가가 높은 것도 현실을 닮았다. 일하는 체험을 하고 나면 가상화폐를 받고, 음식을 먹거나 서비스를 받는 체험은 그렇게 벌어들인 가상화폐를 지불해야 하는데 언제나 두 배가 넘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기 직종이다. 보수가 적고 위험이 따르고 고용이 불안정한 일용직이거나 생산직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그런 직업이 요즘 아이들의 실제 장래희망 우선순위라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이곳에서의 직업은 그저 직업의 외피를 입은 놀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꿉놀이 몇 번 했다고 가사노동의 고단함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이 체험을 통해 진로적성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는 어불성설이다. 아이들도, 시설 관계자도 그곳에 비싼 비용을 치르고 아이들을 데려가는 부모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뜬금없이 옛날 옛적에 갔던 직업 체험 테마파크를 떠올리는 건 지난 1년 자유학년제를 보낸 아이 때문이다. 자유학년제의 취지 가운데 하나가 평가 중심의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고 모색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고, 이를 위해 실제로 진로 관련 교과 수업도 이뤄지고, 여러 가지 체험도 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학교를 통해 할 수 있는 진로 체험이라는 게 그렇게 다양하지 않다. 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대한 전망이 담긴 직업은 기대할 수도 없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교사와 같은 전통적인 직업이나 유튜브 크리에이터처럼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몇몇 직업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을 뿐이다. 탐구나 모색과 거리가 먼 1회성 체험이니 관련 직업에 대한 이해를 얻기도 어렵지만 그나마의 체험 종류도 다양하지 않다. 체험별 인원수가 정해져 있어서 어쩌다 관심이 가는 수업을 찾는다 해도 참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대체로 어린 시절 아이들이 놀이 삼아 방문했던 테마파크에서의 체험 정도 혹은 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테마파크에서 직업을 체험하면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는 가상화폐라도 생기지, 학교 진로체험 과정을 통해 배운 건 인생은 선착순이고 운이 전부라는 아이들의 시니컬한 농담을 그냥 흘려듣기가 어렵다. 

가장 큰 고민은 다음이다. 자유학년제라고 진로탐험을 했으니 이제 어떤 꿈을 꾸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진로를 정하여 생활기록부에 적어야 한다. 지금 적어놓지 않으면 안된다. 나중에 바꾸어도 안된다. 행정규칙상 진로적성은 중학교 1학년이 끝나기 전에만 고칠 수 있고, 2·3학년에는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모르겠는데, 뭐라도 지어내지 않으면 인생의 한 칸이 비어버린 채 고칠 수도 없게 되니 갈팡질팡하는 아이들끼리 튀지 않고 모나지 않은 적당한 직업을 서로 의논하여 찾는 게 요즈음의 교실풍경이란다. 고작 열네 살 아이들에게 미래를 진로를 다그쳐 묻는 것도 지나치게 이르다 싶은데, 심지어 그 기록을 박제한다니, 여기에는 대체 어떤 교육적 미래에 대한 고민이 들어 있는 것일까. 나는 몹시 궁금하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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