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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철밥통의 균열

opinionX 2016. 1. 29. 21:00

1980년대 공항에서는 전기밥솥 상자를 들고 입국하는 여행객이 흔했다. 당시 일본 조지루시에서 만든 ‘코끼리밥솥’은 밥맛 좋기로 유명해 주부들의 로망이었다. 일본 단체관광을 간 한국 주부들이 코끼리밥솥을 싹쓸이해 일본 언론에 소개될 정도였다. 현재 세계 최대 전기밥솥 시장인 중국을 평정한 것은 한국 쿠쿠전자이다. 조지루시, 파나소닉 등 일본 밥솥을 제치고 외국산 중 판매 1위다. 중국인은 쿠쿠밥솥을 ‘한국 명품’으로 인정한다. 1960년대 중반 국내에 처음 등장한 전기밥솥은 밥만 할 수 있었고, 전기보온밥통이 따로 있었다. 버튼 하나로 밥을 짓는 밥통과, 아랫목에 이불로 꽁꽁 싸매두지 않아도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보온밥통의 등장은 혁명적이었다. 1977년 7월 경향신문 ‘농촌 새 풍속도’는 “밥솥계, 밥통계, 텔레비전계 등 신종계가 우후죽순처럼 유행한다”고 전하고 있다.

지금이야 전기밥솥이 밥을 짓고 보관하는 일을 도맡아 하지만, 옛날에는 솥에서 지은 밥을 담아두는 밥통이 있어야 했다. 봄여름에 쓰는 밥통은 질그릇이나 나무로 만들었는데, 자체의 흡수력이 뛰어나 날씨가 더워도 쉬거나 상하지 않았다. 가을에서 겨울까지는 보온효과가 있는 놋쇠, 사기, 자기로 만든 밥통을 썼다. 식기는 본래의 용도 이외에 여러 가지로 대용했지만, 밥통은 밥을 담는 용도 외에 쓰였다는 기록이 없다. 그래서 먹는 일은 제 몫을 하지만 다른 일은 제대로 못하는 사람을 조롱할 때 ‘밥통 같다’고 한다.


밥통을 철(鐵)로 만들었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철밥통이란 단어는 1980년대 중국에서 해고 우려가 거의 없는 공무원이나 국영기업 직원을 톄판완(鐵飯碗)으로 부르기 시작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철밥통보다 연봉이 많은 황금밥통, 진판완(金飯碗)도 있다. 밥통은 직업이나 직장을 의미한다. 철밥통은 깨질 염려가 전혀 없으니 안정적이다. 국내 언론도 1990년대부터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을 부정적으로 지칭할 때 철밥통이라고 한다. 정부가 공공기관 고위 간부에게만 적용했던 성과연봉제를 내년부터 전체 직원의 70%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성과가 낮은 직원은 연봉삭감은 물론 퇴출될 수도 있다. 철밥통에 금이 가기 시작한 모양이다.


안호기 논설위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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