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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성형수술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나라는 어디일까. 모든 분야에서 세계를 주름잡는 강대국인 미국을 제치고 2013년 성형수술 건수 1위에 등극한 나라는 브라질이다. 성형수술이 보편화된 중남미에서도 브라질은 특히 몸매성형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해변으로 가면 비키니를 입은 육감적인 남녀들이 가득하고, 특히 가슴과 엉덩이를 풍만하게 하는 수술이 인기인데, 그 중심에는 리우 카니발이 있다.

우리와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에서 1월은 한여름이다. 무더위에 지친 브라질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붕 떠 있고, 일손을 거의 내려놓는다. 2월이 되면 세계에서 가장 화끈하다는 축제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화려하게 치장한 반나체의 미녀들이 그동안 열심히 갈고 닦은 몸매를 자랑하며 길거리 퍼레이드를 벌인다.

하지만 신나는 삼바 리듬에 맞춰 열정적으로 몸을 흔들며 스트레스를 날린 후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과 개인적 대가는 만만치 않다. 광란의 카니발이 끝나고 누적된 피로로 사망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돈을 써 파산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전신 성형수술의 부작용으로 사망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또 다른 성형강국은 동서양을 잇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이슬람 세계의 의료관광 중심지로 급부상한 터키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탈모치료 및 모발이식 기술력으로 인근 중동뿐 아니라 유럽의 대머리 남성들을 터키로 끌어들인다. 중동에서도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 이란은 의외의 성형강국으로, 특히 코 수술이 대세다. 히잡으로 감싸지 않아 자유롭게 미를 표현할 수 있는 코가 중요해지면서 매부리코를 깎아 작게 만드는 성형수술이 급증했고, 반창고를 붙인 코는 부의 상징이 되었다. 성형수술이 발달한 미국에서 각광받는 분야는 체형관리 및 노화억제 기술이다. 세계에서 비만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미국에서 지방흡입술이 성행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의외로 얼굴 자체를 뜯어 고치는 성형수술은 큰 인기가 없다. 채용 면접에서 외모가 합격을 좌우할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에 불과하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실제 현장 업무 능력과 건강한 신체가 중요한 평가기준이 된다.


광대뼈를 깎는 수술을 위해 병원을 찾은 여성이 병원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_경향DB


메릴랜드대 경제학과 이수형 교수는 미국 사회에서 성형수술은 개인의 생산성을 높이는 인적자본 투자라기보다는 주관적 만족도를 높이는 소비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즉 성형수술로 개인의 자신감이 높아지고 기분전환이 될 수는 있겠으나 성형수술 자체가 노동시장에서 차별을 극복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미용성형의 수도로 꼽히는 한국에서 성형수술은 좋은 직장과 배우자를 얻고 경쟁력을 높이는 필수코스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실제로 성형외과가 밀집된 서울 압구정동에서는 하얀 붕대를 칭칭 감아 미라처럼 보이는 여성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또 한국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예뻐지기를 원하는 외국 여성들이 성형수술을 받으러 일부러 방한하기도 하는데, 세계 성형수술 시장에서 중요한 소비국으로 급부상 중인 중국의 부유층들이 강남의 성형외과를 즐겨 찾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쌍꺼풀 수술 등 자연스러운 얼굴성형, 특히 얼굴을 작게 만드는 양악 수술분야가 세계 최고인데, 높은 비용과 함께 예상치 못한 수술의 후유증을 각오해야 할 정도로 고난도의 전문적인 시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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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계는 넓고 미의 기준은 다양하다. 뼈를 깎는 고통을 거쳐 어렵게 만든 예쁜 얼굴이 외국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첫인상으로 각인되기도 한다. 서구에서 작은 얼굴은 뇌가 작은 사람, 즉 머리가 나쁜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문화권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특히 개인의 취향에 의해 아름다운 외모의 조건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가슴과 엉덩이가 풍만한 글래머 몸매의 소유자가 한국에서는 뚱보로 놀림받지만 브라질 등 중남미 여성들은 일부러 그렇게 보이려고 실리콘 등 이물질을 신체에 주입하는 위험한 성형수술을 감행한다. 작고 좁은 동양인의 코가 이란 사람들에게는 평생 소망하는 이상적인 모델이 되기도 하고, 유럽인들에게는 동양인의 가늘고 쌍꺼풀 없는 눈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매력이 될 수도 있다.

수능시험을 마친 한국의 여고생들에게 졸업 전 마지막 겨울방학은 새봄 대학캠퍼스의 여신으로 변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지고, 특히 고가의 성형수술 패키지는 부모가 딸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사랑하는 어린 딸들에게 압구정동 성형외과 주소 대신 세계지도와 배낭을 건네주는 건 어떨까?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성형수술을 받을 시간과 비용, 용기와 배짱 정도라면 세계여행 정도는 쉽게 준비해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지리적 상상력을 발휘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아름답게 보아줄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 나라’를 콕 찍어 찾아가는 행복한 여행 말이다.

■지리꿀팁

매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하는 ‘성격차지수’는 한 국가에서 남녀 간 상대적 격차를 계량화해 양성평등 정도를 순위로 매긴 것이다. GGI로 본 성형강국들의 양성평등 순위는 2012년 기준으로 미국 22위, 브라질 62위, 중국 69위, 한국 108위, 터키 124위, 이란 127위로 낮게 나타났다. 3년 뒤인 2015년 말 순위는 참담한 수준으로 내려갔다. 미국 28위(구미 선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 브라질 85위, 중국 91위를 비롯해 한국 115위, 터키 130위, 이란 141위 등 꾸준한 하락세다. 특히 브라질에는 2011년, 한국엔 2013년 초 역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취임했지만 이후 통계 수치상 전체 여성의 지위는 오히려 더 낮아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났다.

김이재 | 문화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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