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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여적

[여적] 거리응원

opinionX 2022. 11. 23. 09:41

2002년 6월25일 한국 대 독일의 월드컵 4강전을 앞두고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에 모인 거리응원단이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21일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 현장에 “대~한민국” 응원 구호가 짧지만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 32개 출전국의 응원가들이 소개되는 공연 도중이었다. 한국 중계 캐스터도, 시청자들도 순간 놀랐다. 경쾌한 다섯 번 박수와 합체되는 이 마성의 구호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기억을 거의 자동으로 부른다. 그해 6월 한국은 온통 붉은 물결이었다. 거리에는 ‘비 더 레즈’, 빨간 티셔츠를 입고 응원에 나선 시민들이 넘쳐났다. 이념도 정파도 없이 남녀노소가 자발적으로 뭉쳤다. 축구공 하나가 이뤄낸 일이다. 

축구대표팀 서포터스 ‘붉은악마’가 주도한 거리응원은 ‘도쿄대첩’으로 불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한·일전 때 시작됐고 2002년 절정을 맞았다. 국가기록원은 한·일 월드컵 종료 후 경찰청 추계를 인용해 거리응원 인원이 전 국민의 43%인 2876만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광화문 네거리에만 6차례에 걸쳐 800만명 이상이 모였다고 했다. 이토록 많은 인파가 한데 모여 한뜻으로 무언가를 염원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없었고 미래에도 다시 보기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 

한국의 거리응원은 특유의 신바람과 넘치는 활력, 발랄한 창의력을 펼쳐 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는 순수한 열정과 함께 승리에만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고 응원 자체를 즐기는 여유도 보였다. 무엇보다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단합된 응원을 지속하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치우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일 월드컵의 상징이자 유산으로 남은 거리응원은 이후 한국의 ‘월드컵 문화’로 자리 잡았다.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거리응원이 열리게 됐다. 대한축구협회는 이태원 참사 직후인 이달 초 거리응원 취소를 결정했으나 최근 붉은악마 측이 광화문광장 응원 개최를 신청했고 22일 서울시가 이를 허가했다. 붉은악마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진정한 위로와 추모를 건네겠다”고 했다. 서울시는 인파 관리 등 안전대책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2002년처럼 시민이 한뜻으로 뭉치고 희망과 에너지를 얻는 거리응원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오피니언 |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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