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2022 카타르월드컵 8강전이 열린 지난 10일(현지시간) 알코르의 알바이트 경기장 기자석에 미국 기자 그랜트 월의 영정과 조화가 놓여 있다. 알코르/로이터연합뉴스

어떤 기자이길래 데이비드 베컴과 백악관이 애도를 표하고, 각국 언론이 상세한 부음을 전했을까. 지난 9일 월드컵 8강전 취재 중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진 뒤 숨진 그랜트 월(1974~2022) 얘기다.

월은 미국의 스포츠 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축구·대학농구 담당 기자로 24년간 일했고, 2020년부터 독립 언론인으로 스포츠 보도를 했다. 초기 화제는 그의 돌연사 배후에 카타르 당국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혹 때문인 듯하지만, 사인은 과로사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폭넓은 애도는 그가 존경받는 기자였음을 보여준다. 책 <베컴 실험>에서 베컴의 미국  진출이 미식축구에 미친 영향을 풀어내는 등 ‘축구의 불모지’ 미국에 축구의 아름다움을 알린 최고 전문가라는 평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의 정치·문화 잡지 ‘더 네이션’의 스포츠 담당 에디터 데이브 지린은 12일 ‘우리 중 최고, 그랜트 월에게 바치는 헌사’에서 친절함과 권력 비판을 이유로 들었다. 여기서 친절함은 친절한 기사 쓰기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그건 기본이다). 그는 늘 동료들에게 친절했다고 한다. 조언을 구하는 동료에게 노하우를 공유하고, ‘업계의 미래’ 신참 기자들을 북돋아줬으며, 군소 매체의 요청에 마다하지 않고 글을 써주는 등의 재능 나눔이다. 그 자신이 선배들로부터 받았던 걸 돌려주려 한 행동이었다. 이 업종은 그런 것이다.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경쟁하지만 동시에 그 진실을 캐기 위해 협력하기도 하는.

스포츠 기자에게 권력 비판은 뭘까. 최근 일에 국한하자면 국제축구연맹(FIFA)과 카타르 월드컵조직위원회 비판이다. 그는 월드컵 개최지가 카타르로 결정됐을 때 카타르의 독재정치, 금권에 좌우된 FIFA를 강하게 비판했다. 월이 죽기 전날 쓴 마지막 칼럼은 필리핀 이주노동자가 카타르 훈련경기장에서 일하던 중 낙하물에 맞아 숨진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누구나 죽을 수 있지 않느냐. 일하는 중에도, 잠자는 중에도. 그게 어째서 스포츠 기자의 첫 질문이 되어야 하는가’라고 훈계한 나세르 알카터 월드컵조직위원장 발언을 비판했다. 

‘스포츠 전문기자’ 이전에 ‘기자’였던 사람. 그저 자신에게도 좀 더 친절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뿐.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오피니언 | 여적 - 경향신문

美 달 궤도 무인 우주선 '오리온', 지구로 귀환

www.khan.co.kr

 

'일반 칼럼 >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죽마고우 ‘보은 인사’  (0) 2022.12.19
[여적] 우주군 사령부  (0) 2022.12.16
[여적] 4·3과 미국  (0) 2022.12.13
[여적] 아틀라스의 사자들  (0) 2022.12.13
[여적] 노옥희 선생님  (0) 2022.12.13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