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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여적

[여적] 4·3과 미국

opinionX 2022. 12. 13. 14:15

1948년 5월 5일 제주 4·3 대책회의 참석을 위해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미군정 간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주 4.3아카이브 제공


1948년 ‘제주 4·3’이 격화되자 미군정은 4월17일 모슬포에 주둔 중인 국방경비대 9연대에 진압을 명령했다. 그러나 9연대장 김익렬 중령은 우익단체인 서북청년회와 경찰의 도민 탄압이 사태의 도화선이라 보고, 평화적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김 중령은 4월28일 남로당 제주위원회 조직부장이자 무장대 군사총책 김달삼과 만나 72시간 안에 전투를 중지하고 무장해제와 하산이 이뤄지면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는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미군정 사령관 하지는 협상 결과를 무시했다. 사흘 뒤인 5월1일 발생한 오라리 마을 방화사건은 무력진압의 신호탄이 됐다. 미군정과 경찰은 오라리 방화를 무장대 소행으로 조작했지만, 우익청년단이 저지른 일로 후일 밝혀졌다. 미군정은 24군단의 123통신사진파견대가 불타는 마을을 비행기까지 띄워 촬영한 영상물 ‘제주도의 메이데이’를 공개했다. 강경진압의 기획에 미군정이 다각도로 간여한 정황 중 하나다. 

미군정 수뇌부가 참석한 가운데 5월5일 제주에서 열린 긴급대책회의에서 강경진압이 최종 결정됐고 김 중령은 해임됐다. 4·3사건이 제주도민 3만여명이 숨지는 비극으로 치닫는 과정에 미국 책임이 작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팩트들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미 싱크탱크 윌슨센터가 주최한 ‘제주 4·3과 인권, 그리고 한·미 동맹’ 심포지엄이 열렸다. ‘금지된 주제’인 미국의 책임을 묻는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미국이 뒤늦게나마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는 미국이 제주 4·3사건의 역사적 사실을 “고통스럽지만 직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은 2016년 5월 논란을 무릅쓰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 함께 원폭 피폭지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인류에 대한 핵무기 사용이라는 ‘인도적 문제’를 미국이 외면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냈다. 오바마의 전례를 따라 조 바이든 대통령도 제주 4·3평화공원을 방문하는 아이디어가 이날 토론회에서 나왔다. 동맹이 건강성을 유지하려면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미·일 사이에서 가능했던 일이 한·미 간에 안 될 것 없다.

<서의동 논설위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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