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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결정이 임박했다. 8명의 헌법재판관들에게 대한민국의 운명이 맡겨진 느낌이다. 헌법재판관들의 평소 성향이 어떻든 간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인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 보더라도 탄핵은 열 번 인용되어도 지나치지 않다. 국회 소추위원단이 최종변론에서 얘기한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을 광범위하게, 그리고 중대하게 위반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시스템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왜 탄핵 여부에 대한 결정을 헌법재판소에 맡길 수밖에 없는라?’라는 것이다.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았다면, 파면시킬지 여부도 국민들이 결정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오스트리아 헌법의 경우에는, 연방 하원에서 대통령을 해임시키자는 발의안이 통과되면, 해임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도록 되어 있다.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국민들이 탄핵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을까? 국민들 대다수가 탄핵을 원하는데도, 탄핵 여부에 대한 판단이 8명의 법률실무가들에게 맡겨지는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이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등 8명의 재판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불출석한 박 대통령은 대리인단 이동흡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이처럼 대한민국의 정치시스템에는 생각해봐야 할 점들이 많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쓴다고 해서 다 똑같은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다. 대한민국은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정치시스템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 특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좋은 선거제도’와 ‘보완장치로서의 직접민주주의 제도’가 모두 없는 나라이다.

그래서 탄핵이 이뤄진다면, 그 이후에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정치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와 관련된 ‘사이비 논의’가 많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회 일부에서 나오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논의이다. 국회에 설치된 개헌특위 소위원회에서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에 동의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이들의 주장은 국회의원 다수의 지지를 받는 총리 중심의 내각이 많은 권한을 가지게 하고, 대통령은 매우 축소된 권한을 갖게 하자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 때문에 이런 상황이 생겼으니, 국회로 권력을 가져오자’는 얘기이다.

그러나 이 얘기는 거의 ‘기만’에 가까운 얘기이다. 오스트리아가 갖고 있는 정치시스템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고 싶은 아주 일부분만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권력구조에서 총리 중심의 내각이 많은 권한을 행사하고, 대통령은 평상시에 명목상의 지위만 갖는 것은 사실이다. 헌법상으로는 대통령이 의회해산권, 총리 및 장관 임명권 등 무시 못할 권한을 갖고 있지만, 평상시에는 스스로 권한행사를 자제하는 정치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정치시스템에는 이런 측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스트리아는 매우 공정하면서도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갖고 있는 국가이다. 오스트리아의 연방하원 의원 선거는 비례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비례하여 하원 의석이 배분되게 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통령을 뽑을 때에도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는 사람이 없으면, 1등과 2등 후보를 골라서 결선투표를 한다. 이런 선거제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는 다양한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쟁하며 합의점을 만들어나가는 정치구조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국회에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한다는 국회의원들 중에 상당수는 오스트리아의 선거제도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를 회피하고 있다. 한 국가의 정치체제를 얘기하면서 자기 입맛에 맞는 부분만 취사선택해서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실 지금의 지역구 중심 소선거구제를 유지한 채로,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고 총리 중심으로 권력구조를 개편한다면, 그것은 오스트리아식이 아니라 영국식이 될 수밖에 없다. 영국의 총리는 ‘선출된 독재자’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이다. 그 이유는 영국의 선거제도가 지역구에서 1등 하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 중심이고, 그것을 통해 거대정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회 과반수 정당의 지지를 등에 업은 총리는 대통령 못지않은 권력을 가질 수 있다. 일본의 아베 총리도 그런 사례이다. 그래서 정치시스템을 논의할 때에도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오스트리아는 선거제도만 좋은 것이 아니라 직접민주주의 제도도 채택하고 있는 국가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통령을 파면할지도 국민들이 직접 결정한다. 10만명이 서명하면 국회에 안건을 제출할 수 있는 국민발안 제도도 도입되어 있다. 원전 폐쇄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쳐 원전 폐쇄를 결정했을 정도로 국민들의 직접 참여를 중시하는 국가이다. 인구가 900만명도 안되지만, 연방제를 실시할 정도로 지방분권이 잘되어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만약 오스트리아의 정치시스템을 배우겠다면, 이런 모든 면을 배우길 바란다. 그리고 국회의원들끼리 하는 개헌논의는 중단하고 폭넓은 공론장을 열기를 바란다. 최근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원내대표들이 모여 자신들만의 단일 개헌안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는데, 그런 시도는 안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 식의 정략적이고 졸속적인 개헌은 결코 국민들의 동의를 받을 수 없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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