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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5·9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감개무량한 일이다. ‘내년 2월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집권했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보면 정말 아찔하다. 지금까지 드러난 부패와 국정농단이 그때까지 지속되었다면 대한민국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갔을 수 있다. 그래서 5월9일은 4·19, 6·10과 함께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낸 또 다른 기념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5월9일에 잊지 말아야 할 것들도 있다.

첫째, 탄핵과 조기 대선을 함께 이뤄낸 동료 시민들 중 상당수가 투표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 19세로 정해진 선거권 연령 때문이다. 작년 10월 이후 청소년들은 촛불시민혁명의 주역이었다. 광장에서 발언하고 함께 촛불을 들었다. 그런데 투표는 하지 못한다. 최소한 만 18세부터라도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선거권 연령을 낮췄어야 했지만, 국회에서는 그것조차 통과되지 못했다. 그래서 지난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들도 생일이 5월9일 이전이 아니면 투표권이 없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오스트리아, 스코틀랜드 같은 나라는 만 16세로 선거권을 낮췄고, 이웃 일본조차도 만 18세로 선거권을 낮췄는데 대한민국이 여전히 만 19세라는 것은 정말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래서 청소년 단체들이 모의투표 사이트(www.18vote.net)를 만들고 투표운동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만 19세가 안된 시민들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표권 문제도 있다. 당장 5월9일에도 근무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공직선거법 제6조의2에 따르면, 노동자가 사전투표기간과 선거일 모두 근무하는 경우 투표에 필요한 시간을 고용주에게 청구할 수 있고, 고용주는 이를 보장해 줘야 한다. 위반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법조항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설사 안다고 해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이런 요구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선거일을 법정유급휴일로 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당장 5월9일로 다가온 대선에서 투표의사가 있는 노동자들은 모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철저하게 감독해야 한다.

둘째, 우리 삶이 바뀌려면 대통령 교체를 넘어서서 ‘정치시스템 교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탄핵되었지만 비인간적인 사회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광화문에는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그래서 대선 이후가 중요하다. 특히 5월9일부터 한두달 정도의 기간이 촛불시민혁명이 더 진전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다. 이 시간 동안 시민들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이 ‘영웅’처럼 뭔가를 해결해 주겠지 하고 기대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사실 새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은 당선 직후부터 최악의 환경에 둘러싸일 가능성이 높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회는 여소야대 상황이 될 것이다. 총리와 장관 인선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사드 등 현안을 푸는 데 매달리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릴 것이다.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정책들도 국회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안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새로운 대통령에게만 기대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핵심은 국회다. 국회를 바꾸지 않고서는 촛불시민혁명은 진전할 수 없다. 개혁을 위한 입법도, 우리 삶을 위한 정책예산도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5·9 대선 이후에는 ‘대통령도 바꿨으니 국회도 바꾸자’는 목소리를 함께 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는 광화문 광장에 모인 촛불이 여의도로 이동할 때가 되었다.

국회 개혁은 단지 국회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국회 개혁의 핵심은 국회를 구성하는 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바로 선거제도 개혁이 정치 특권계급화되고 있는 국회를 개혁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이번에 유력 대선후보들도 약속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정당득표율대로 국회의석을 배분하는 제도) 도입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래야 공정하게 민심을 반영하는 국회 구성이 될 수 있고, 다양한 정당이 정책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회를 만들 수 있다. 물론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과도한 특권을 폐지하고, 지역구 예산 나눠먹기 등 국회의 잘못된 행태를 타파하는 것도 필요하다.

마침 6·10 민주항쟁 30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6·10 때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국회를 포함한 전체 정치시스템을 바꾸지 못했던 탓이 크다. 이번 6·10 항쟁 30주년에는 국회를 바꾸고 잘못된 정치시스템을 바꾸자는 데 전국의 시민사회가 함께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지방자치 개혁도 필요하다. 지금 지방자치에 부패, 예산낭비 등 온갖 적폐들이 쌓이고,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지방자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지방선거제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국의 지방선거는 특정정당의 1당 지배체제, 거대정당의 정치독과점 구조를 만들었다. 여성과 청년들, 소수자와 약자들은 지역정치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풀뿌리민주주의가 아니라 풀뿌리 기득권주의가 고착되고 있다. 그래서 내년 6월로 다가온 지방선거 전에 선거제도의 전면 개혁이 필요하다. 물론 지방선거제도를 바꾸려 해도 국회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곳이 국회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5월10일 아침을 국회 앞에서 1인시위하는 것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30년 만에 온 기회를 또다시 ‘미완의 시민혁명’으로 끝내지 않겠다는 다짐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하기 위해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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