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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한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길고 힘든 싸움 끝에 이윤에 눈이 먼 기업과 무책임한 정부, 그리고 기업을 도와준 과학자에 의한 총체적 사안임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정부는 발생 초기부터 2011년에 종료될 수 있었던 상황마저 지금까지 끌고 온 책임이 분명함에도 최근 이를 온정주의로 표현하며 책임을 회피해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이번 참사에서 해당 독성 실험이 서울대 수의과대학에서 진행된 탓에 학내외에서 많이 듣는 질문은 왜 수의대에서 비윤리적인 일이 반복되느냐다.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을 포함해 지난 10년 동안 수의과대학에서 3명의 교수가 퇴출됐고, 이번 참사에도 연루됐다. 우연도 겹치면 필연이듯이 작은 대학 규모로 볼 때 단순 개인연구자 탓으로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다.

이번 상황을 충격적으로 바라보는 대부분의 수의대 교수는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자정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교수들은 연루된 동료교수를 희생양으로 비호하며, 객관적 연구윤리를 거론하는 교수들을 몰인정하거나 인간적이지 못하다고 본다. 지나친 보호나 배려의 부정적 의미를 지닌 온정주의가 아닐 수 없는데 문제는 이것이 특정집단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모습이라는 데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5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OECD 최하위다. 한국인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사리사욕에 눈멀고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품성을 지니거나 사회체제가 유별나게 부패를 조장하는 구조가 아니라면, 이런 현실은 우리에게 체화된 그 무언가를 의미한다. 특히 비리나 부정부패가 개선되지 않고 반복되는 상황의 원인이다. 정(情)의 문화에 유교적 가부장 문화 및 상명하복의 군대 문화가 녹아든 한국사회에는 사적인 인정과 배려나 권위에 대한 복종 등이 공적 영역까지 자리 잡은 온정주의가 있다. 집단 구성원의 비리에 접했을 때 대부분은 되도록 조용히 마무리하고 없던 일로 감싸주는 것이 인간적이며, 잘못된 상부 지시라도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조직을 무시한 이기적 행위가 된다. 공사를 무시한 이런 문화에서 구성원 간의 유대는 강화되겠지만 집단의 자정과 개선 노력은 불가능에 가깝다.

친일파가 지금도 득세하는 한국사회에서 그때는 누구나 그랬다는 관용적인 온정주의가 지금도 언급되고, 안되면 되게 하라는 수직문화 속에 각종 비리가 드러나도 정부마저 적당히 덮어버린다.

심지어 종교인마저 불법 행태를 보여도 관행이라서, 인간이라서 등으로 수용하는 것은 독립을 위해 목숨 버린 이들을, 사기 치지 않고 성실히 살아온 이들을, 표절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온 이들을, 제 임무에 충실하게 살아온 이들을 철저히 욕되게 한다.

공사를 떠나 큰 틀보다는 눈앞의 이익을 생각하며 적당히 하자는 온정주의는 공유지의 비극을 강화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미국대학 연구진이 발표한 미세먼지 173위에서 보듯이, 국제 공조가 요구되는 탄소저감 환경개선에 나태한 정부로 인해 대외만이 아니라 자국민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난다. 온정주의는 집단이건 국가건 당사자에게 반성과 개선의 여지를 제거하고, 속한 집단의 자정을 차단하기에 결국은 당사자나 집단이나 모두에게 해악이 된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사회 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은 학연과 지연 등의 연고주의와 이에 손잡은 온정주의다. 집단 내 기본과 원칙을 지키기보다는 구성원간의 사적 이해를 우선하는 현실을 극복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자정과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원칙과 기본이라는 기초적인 것일수록 작은 것이 무너질 때 커다란 굉음으로 전체가 무너져 내린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온정주의는 하늘과 땅의 간극보다 더 크다. 공적 영역에서의 후자는 인간애가 아니라 썩은 환부를 덮어 집단의 생명을 잃게 하는 복지부동의 탐욕일 뿐이다.


우희종 |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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