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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7일 서울 강남역 근처 화장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한국사회를 흔들었다. 그 살인자의 한마디 때문에. “평소 여자들이 날 무시해서.” 범죄의 희생자를 특정했다는 말이다. 이것은 누가 봐도 피해자가 특정된 범죄이다. 그런데 경찰이 이를 ‘묻지마 살인’이라고 규정하면서, 사회적 공분은 배가됐다. 그리고 이 사건과 그에 대한 대응은 한국사회에서 젠더 인식의 현주소를 낱낱이 드러냈다.
이 사건은 명백히 특정 타깃을 겨냥한 증오범죄이다. 그래서 이 살인만큼 문제적인 것은 경찰이 이 행위를 ‘묻지마 살인’이라고 규정한 것이 아닐까. ‘묻지마 살인’의 개념은 형사법적 규정이 아니다. 그러나 경찰은 ‘묻지마 살인’이라고 사회적인 규정을 내렸다. 이 지점이 우려스럽다. 공권력이 이런 규정까지 내렸으니, 이 살인이 어떤 여파를 몰고 올지.
우선 2차적 가해의 양산. 추모하는 이들 앞에서 굳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죽음을 조롱한다. 그런데 국가와 경찰이 여성에 대한 범죄로 규정하고 단호히 대처했다면 이런 장면이 가능했을까. 전국적 여성혐오 반대행동으로 번지려던 움직임은 증오시위의 압박감에 지역에선 촛불을 거두고, 서울에서도 안전한 장소로 옮겨졌다. 이것은 확실한 ‘시그널’이다. 이 사회 내 젠더권력이 어떻게 현저히 기울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그널.
26일 영정 액자 모양의 거울을 든 시민들이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현장 인근을 돌고 있다. 이들은 누구라도 여성혐오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해 이 행사를 제안하고 참여했다.
_경향DB
둘째 모방범죄의 창궐. 25일 부산에서 지나가는 여성에게 이유 없이 살인 흉기를 휘두른 이가 기자의 왜라는 질문에 답했다, “아시잖아요.” 기자가 또 물었다. 그러자 그의 답은, “묻지 마세요.” ‘묻지마’ 범죄라는 것이다. 난 그렇게 읽었다. 그뿐만 아니다. 강남역 여성살해자도, “세상에 이 비슷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랬다. 비슷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길 가던 여성, 등산하던 여성, 지하철 여성 승객들에게 무차별 ‘묻지마 폭력’이 횡행하고 있다.
결국 여성을 겨냥한 ‘묻지마’ 범죄라는 형용모순적인 규정이 문제다. ‘묻지마’ 범죄가 되는 순간, 사회적, 젠더적 맥락은 거세되고 범죄는 비사회화된다. 그러면서 개인적 일탈 혹은 사회병리적 문제로 뒤바뀐다. 이것이 세번째 문제다.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맥락은 사라졌다. 지금 정부는 강남역 살인을 정신분열자의 우발적 행위로 간주하고, 정신분열증 환자 전국 전수 조사에 돌입하고, 그들을 강제입원시키는 조처를 내놓았다. 그리고 곧 여성들에게 호신술을 가르치고 묻지마 범죄를 피하는 요령 등을 가르쳐 줄 것 같다.
이것은 근대국가가 범죄에 대처하는 가장 흔한 방식이다. 심각한 사회문제적 맥락을 깔고 있는 범죄를 정신병자나 사이코패스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 전형적인 경찰국가의 방식이다. 사회적 책임이나 사회의 문제, 나아가 국가의 문제는 모두 거세되고, 범죄는 개인화되고 병리적 문제로 바뀐다. 그러면서 사회 공안, 즉 사회적 공공안전을 위해 국가와 공권력의 권한은 강화된다.
하지만 증오범죄는 사회적이다. 그래서 ‘증오범죄’인 것이다. 정신질환도 사회적 질병이다. 고로 증오범죄와 정신질환은 사회적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고리에는 여남 적대가 아니라 사회화된 젠더체제가 있다. 남성은 여성에게 쉽게 자신의 절망과 좌절과 상대적 박탈감을 투사하도록 용인하고, 그렇게 굴러가는 권력장치. 결국 사회적 차별의 위계질서다.
미국은 인종, 한국에선 젠더 혹은 지역이 그런 사회적 차별장치로 작동하면서 사회적 모순을 희석시키는 표면적 장치가 된다. 그리고 이는 ‘위험계급’의 등장이기도 하다. 자신들과 다른 존재, 존재의 ‘차이’에 대한 공포와 혐오와 적대의식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쉬운 대답처럼 횡행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를 나의 고유성으로 정의하지 않고, 타자를 통해, 타자에의 반정립과 개인화된 적대를 통해 구성한다. 적대적 사회에서 빈곤한 적대의 정치학이다. 겨냥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저 구조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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