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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일 수 없기에 식물의 경쟁은 동물보다 훨씬 치열하다. 영역싸움에서 밀리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동물과 달리 그 자체가 생사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함께 커가는 동종 간 싸움에서 이기면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종의 침입을 막아냄과 동시에 동종 간 영역싸움, 즉 공격과 방어를 함께하면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게 식물이다. 대개 처음에 자라나는 식물은 상대적으로 방어능력이 뛰어나며, 방어를 뚫고 자란 후발주자는 공격능력을 발휘한다.

소나무도 별반 다르지 않은 운명을 타고났다. 다양한 연유로 척박한 흙이 드러나게 되면 소나무는 빠르게 자리를 차지하고 다른 종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데, 솔잎에 다량 함유된 항생물질이 이 역할을 한다. 다른 종의 침입을 막는 데 힘을 쏟지만 종내경쟁도 녹록지 않다. 10년 전후의 어린 소나무숲이 20년 정도의 젊은 숲으로 바뀌는 동안 절반이 죽게 된다. 그리고 50년 정도의 중년 숲으로 변하면서 또 살아남은 개체의 절반이 죽는다. 그나마 소나무숲으로 유지될 경우에 그렇다는 거다. 바닥에 떨군 솔잎은 해가 가면서 썩게 되고 방어능력이 서서히 사라지는데 이 틈을 타 다른 종이 싹을 틔운다. 이들은 크게 자란 소나무 사이에서 보호받으며 빠르게 성장하는데, 더 이상 소나무의 보호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소나무를 공격한다. 스스로는 공격할 수 없기에 자신에게는 해가 없으면서 소나무를 죽일 수 있는 곤충을 유인한다. 소나무를 죽이는 곤충이 곰팡이와 공생관계를 이루는 이유이다. 이렇게 숲은 성숙해간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 비해 참 정 없는 것이 자연이다.

피톤치드. 식물이 병원균이나 곤충, 곰팡이에 저항하려 분비하는 물질이다. 핵심은 다른 식물이 싹을 틔우지 못하게 하는 방어기작에 있다. 숲속에 들어가면 이 물질이 우리 몸에 흡수되어 인체의 방어능력까지 키워준다. 그리고 우리 조상은 이 특성을 활용해 식품을 오래 저장하는 데 쓰기도 했다. 대표적인 음식이 송편(松-)이다. 솔잎을 떡시루에 깔고 그 위에 쌀떡을 올리고 다시 솔잎을, 떡을 차곡차곡 쌓아 쪄낸 이 떡은 찌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솔 향이 배어 송편이라는 이름의 참맛을 내게 된다. 송편의 솔잎은 단순히 떡의 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솔잎의 강한 항균작용으로 쉬이 상하는 떡을 오래 보관하고 이 항균물질을 체내로 받아들이기 위한 조상의 지혜이다. 지금은 추석의 대표음식으로 알려졌지만 옛날 조상들은 정월대보름부터 봄까지 주로 먹던 떡이다. 질병에 가장 취약한 때가 계절이 바뀌는 봄이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그런데 이제 이 향긋한 송편을 맛보기 어렵다. 꽤 오래전부터 꿀벌을 죽이는 농약으로 알려진 네오니코티노이드계열 살충제를 산림에 뿌려왔기 때문이다. 산속 어느 소나무에 농약을 뿌렸거나 주입했는지 모르기에 아예 먹으려 하지 않는 게 속 편하다. 산림청이 안전하다고 사용하던 바이엘사의 이 농약을 유럽연합에서는 올봄부터 경작지에서조차 사용을 금지시켰다. 정부가 이제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지만 불행히도 멀쩡한 산에 농약을 뿌리는 일을 멈추지는 않을 것 같다. 왜 숲의 성숙을 막으면서 깨끗한 숲을 오염시키는지, 경쟁에서 도태된 나무의 무덤을 만들어야 하는지 이유는 군색하다.

오랫동안 우리 주변에서 소나무가 잘 자랐던 것은 솔숲의 마른 솔가지와 자연스레 죽은, 경쟁에서 도태된 소나무를 겨울마다 거두어갔기 때문임을 외면하지는 말길 바란다. 에너지 전환에 따른 멀쩡한 변화를 재앙으로 몰아가는 상황을 이제 멈출 때가 되었다. 30년이면 이미 오래 해보지 않았는가? 2020년에는 자연의 섭리인 숲의 성장을 더 이상 재선충이라는 재난프레임으로 가두어 전국을 농약숲으로, 보기 흉한 플라스틱묘지로 만들지 말길 바란다.

올봄에는 농약냄새 대신 뒷산의 솔잎으로, 그 이름에 걸맞은 향긋한 송편 한 점을 먹고 싶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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