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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을 한 통 받았다. “귀하의 노력에 힘입어…”로 시작되는 메일이었다. 의례적으로 보내는 것이었겠지만, 다 읽고 나니 유독 한 단어가 입에 남았다. 바로 ‘힘입다’였다. 활자로는 간간이 접했지만 입 밖으로 내어본 적은 한 번도 없는 단어였다. 힘 있는 상태일 때는 굳이 다른 힘이 필요치 않다. 내 기세로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반면, 힘없는 상태일 때는 힘이 나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그것을 빌리거나 합칠 수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아마도 ‘힘입다’의 첫 번째 뜻을 염두에 두고 썼을 것이다. “어떤 힘의 도움을 받다.” 간절하게 부탁할 때의 마음은 아마도 이와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이 어떤 효과를 발휘할 때 힘을 보탠 사람도 힘을 입은 사람도 행복할 것이다. 직접적인 도움과 맞닿아 있는 첫 번째 뜻은 주로 긴박한 상황과 함께 쓰인다. 수해 지역에 성금을 보내고 복구 현장에 가서 이런저런 일을 할 때, 도움을 받는 사람은 힘입는다.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목격할 수 있다. 가시적인 힘이다.

현장성이 두드러지고 전후의 상황 변화가 확연한 첫 번째 뜻과 달리, ‘힘입다’의 두 번째 뜻은 육안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어떤 행동이나 말 따위에 용기를 얻다”라는 의미처럼, 힘을 입었다는 사실을 겉으로는 알 수 없다. 심지어 그것이 힘이 되는지조차 현장에서 가늠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해나 응원이 그렇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그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삶의 다음 국면을 맞이할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힘은 다시 살아야 할 마음을,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는 힘이다.

‘힘입다’의 세 번째 뜻은 “어떤 것의 영향을 받다”다. 행사에 가면 주인공을 돋보이게 해주는 존재가 있다. 주로 사회자가 그 역할을 맡곤 하는데, 사회자의 역량에 따라 주인공의 매력이 한껏 발산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사회자가 본분을 망각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데 열중한다면, 주인공이 힘입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보색 대비처럼 말이다. 보색을 서로 섞으면 무채색이 되지만, 하나를 배경으로 다른 색이 놓이면 더 뚜렷이 보인다. 빨간색과 청록색, 남색과 노란색, 녹색과 주황색처럼 말이다. 이는 누군가를 힘입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닌 힘을 내려놓아야 함을 뜻한다. 북돋우는 힘이다.

그날 밤, 누군가에게 보내는 메일에 ‘힘입다’라는 단어를 썼다. 고마움을 전하려 쓰기 시작한 메일이었는데, 저 단어를 사용하니 그 사람이 내게 써준 마음이 좀 더 선명해졌다. 동시에 내가 얼마나 많은 존재들에게 힘입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부모님의 지원에 힘입어 나는 부족함 없이 자라날 수 있었다.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고 동료들의 격려에 힘입어 이때껏 글을 쓸 수 있었다.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몇 권의 책을 낼 수 있었다. 지인들의 도움에 힘입어 어려운 시기를 견뎌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신문사에서 내게 내어준 지면에 힘입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다음날 아침,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택배 왔습니다.” 주문한 책들이 온 모양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4층 건물의 4층이다. 승강기도 없고 계단도 제법 가파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지 기사님의 이마에는 아침부터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번번이 고맙습니다. 주스 한 잔 드시고 가세요.” 갈증이 심했는지 기사님은 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마의 땀방울을 훔치며 환히 웃는 모습을 보고 힘입는 몸과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 미소에 힘입어 하루를 상쾌하게 보낼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입는 것처럼, 나는 매일 힘입는다. 철에 맞는 옷이 따로 있는 것처럼, 사는 데는 알록달록한 힘이 필요하다. 꼭 커다랗지 않아도 된다. 자잘해도,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않아도 그 힘은 공기처럼 나를 감싼다. ‘힙입다’라고 소리 내어 발음해본다. 무엇보다 힘을 옷처럼 입을 수 있다니, 꼭 슈퍼맨이나 배트맨의 슈트처럼 근사하지 않은가.

자주 입고 자주 입히고 싶은 말이다, 힘입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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