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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노동이 타깃이다. 친기업 노선의 다른 이름인 신자유주의는 반노동과 반정치를 기본으로 한다. 반노동은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고, 반정치는 정치가 시장에 개입해 약자의 편을 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를 따르는 정부가 반노동의 정책, 즉 노동개혁을 아젠다로 꺼내는 것은 쉽게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 초반이고, 정부 출범 2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 노동개혁 카드를 꺼내는 건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노동개혁은 자본-기업을 한편으로 하고, 노동-노조를 다른 한편으로 해서 벌이는 거대한 규모의 사회경제적 대결, 사회적 역관계와 경제질서의 근간을 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끝날 프로젝트가 아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자원도 엄청 투입되어야 하는 대격전이다. 신자유주의 정권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영국의 대처 정부도 광부노조를 제압하는 데 많은 준비와 공을 들였다. 게다가 집권 초기에 했다. 미국의 레이건 정부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타이밍이 부적절해 보이는데, 왜 박근혜 정부는 노동개혁을 선거 전 아젠다로 제기하는 것일까?

우선 드는 생각은 박근혜 대통령의 소신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냥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원칙과 소신이라는 이름하에 일체의 타협을 거부한다.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찍어내는 과정에서 보듯 박 대통령은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동개혁에 대한 타협을 시도했으나 노동계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제 힘으로 관철시킬 때라고 박 대통령이 판단했을 수 있다. 이 정부는 대통령이 정하면 그걸로 끝,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만난 다음부터 노동개혁을 외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장도리 2015년 7월 24일 _경향DB


다른 추론도 가능하다. 박 대통령이 선거용으로 이 아젠다를 꺼낼 수도 있다. 어차피 경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외부 환경도 좋지 않은 데다 경제팀, 나아가 정부 차원의 무능이 겹쳐져 민생경제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이런 펀더멘털(기초여건)로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다른 프레임으로 바꿔야 한다. 경제가 안 되는 핑곗거리를 찾아야 한다. 이런 필요성에 안성맞춤이 노동개혁이다. 노동자 해고를 쉽게 하고, 임금을 깎겠다고 하는 노동개혁은 노조의 반발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노조는 파업이나 대규모 집회로 맞설 테고, 정부는 공권력으로 제압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대립의 수위는 계속 높아질 것이다.

10%에 불과한 노조조직률과 대기업의 정규직을 기반으로 하는 노조의 기본 특성을 고려하면 정부로선 해볼 만한 싸움이다. 노조·정규직 이기주의를 타깃으로 삼고, 다수의 비노조·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여기에 대항하도록 하는 노·노 갈등의 프레임은 저소득층을 동원하는 데 효과적이다. 사회적 긴장이 높아질수록 보수 성향의 지지층을 결집하기도 쉬워진다. 게다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하도록 분리하고, 노동개혁에 대한 이견 때문에 야권 연대도 삐걱거리게 되면 여권이 얻는 선거 이득도 크다.

정부의 실적에 대한 평가나 실정에 대한 심판 정서가 투표의 핵심 잣대가 되지 않도록 하는 수단으로 진영 대결만큼 좋은 게 없다. 진영으로 나뉘어 강하게 대립하면 특정 진영의 잘잘못은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지지층의 충성도와 결집도에서 거의 절대적 우위를 누리는 여권이니 진영 대결은 그들에게 유리한 지형이다. 진영 대결을 조성하는 데 가장 좋은 이슈가 노동과 북한이다. 따라서 정부와 여당이 노동개혁을 제기하는 것은 총선을 겨냥한 전략적 포석이라 할 수 있다. “표를 잃는” 개혁이란 김무성 대표의 말은 정치적 블러핑이다.

정치세력이 선거를 겨냥해 유리한 프레임을 가동하려는 것은 나쁜 짓이 아니다. 선거에서의 유불리는 이슈나 프레임을 선택할 때 첫 번째 기준이다. 정치나 선거에선 어떤 이슈를 제기하느냐, 제기된 이슈의 성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중요하다. 따라서 여권의 의도와 달리 노동개혁은 야권의 대응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럼, 야권이 잘할 수 있을까? 익숙한 절망에 빠지거나 불편한 희망에 매달리는 건 부질없다. 승리의 욕망, 담대한 전략으로 돌파해야 한다. 사족!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돕는다고 하더라.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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