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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를 바꾸려면 국가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입법부와 행정부에 집중되어 있다. 이 때문에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과 행정부를 이끄는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택된다. 나라마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각각 차지하는 권력의 양과 질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행정부의 권력이 입법부의 그것을 압도하고 있다. 여소야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입법부의 목소리가 커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대통령(행정부)이 더 많은 권력을 보유하고, 행사하는 것만큼은 엄연하다. 이것이 한국의 공식·비공식적 권력편제의 본질이다.

사회경제적 약자의 편에 서는 게 진보다. 사회경제적 약자의 삶을 개선하고, 그들에게 생존권·정치권·시민권·사회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 진보의 역할이자 의무다. 진보가 이런 역할을 감당하려면 부득불 권력을 잡아야 한다. 특히 다른 무엇보다 행정권력을 장악해야 한다.회권력과 행정권력이 다 필요하지만 권력의 크기와 중요성을 감안하면 행정권력이 먼저다. 그래서 어떤 정당이 행정권력을 잡는 걸 두고 집권이라고 한다. 여야의 구분도 누가 행정권력을 장악하는지에 따른 것이다. 그만큼 행정권력을 잡는 건 정당·세력에게 무엇보다 앞서는 과제다. 그렇다고 해서 행정권력의 장악이 집권의 전부는 아니다. 넓게 보면, 입법부가 행사하는 권력이 만만찮기 때문에 의회권력을 장악하는 것도 집권의 일부다. 거의 모든 정책이 입법으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정당 구성원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이 국회의원이다. 이 국회의원들 중에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른바 대권의지를 가진 이들도 있긴 하지만 절대 소수다. 대다수는 국회의원으로서 재선(reelection)을 목표로 한다. 정당의 구성원 중에서 국회의원이 아닌 부분, 즉 당원이나 지지층 또는 당직자나 활동가 등은 집권이 근본적 목표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거나 총선에서의 승리를 특정 국회의원의 당락보다 더 중요시한다는 얘기다. 행정권력을 잡고, 의회 다수당이 되었을 때 비로소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집단적 힘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도 집권하면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재선이 훨씬 사활적인 목표다. 정당 내에서 구성원들 간에 이해관계 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새정치민주연합에 흔히 가해지는 비판이 과연 집권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만 놓고 보면 집권의지가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집권의지가 있다면 당연히 자신의 개인적 이해보다는 당익(黨益)을 앞세워야 하고, 하나의 팀으로서 당이 이기는 데 기여하는 것을 행보 선택의 잣대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좋은 정당이고, 강한 정당이다. 최근 새누리당에서는 다음 총선에서 출마하지 않겠다는 자발적 선언을 한 사람이 벌써 4명이다. 각각의 이유를 따지면 지질할지 몰라도 당의 신뢰를 높이는 데엔 기여한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 문재인 대표의 부산 불출마는 희생이라 보기 어렵고, 불출마 의향을 밝힌 최재성 의원은 대충 얼버무린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_경향DB



새정치연합은 패배에 이골이 난 정당이다. 각각 두 번의 총선과 대선, 중간 중간의 보궐선거도 잇따라 패했다. 기업이 이 정도 적자라면 당연히 폐업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이면 총선 불출마 선언이 앞다퉈 나와야 정상이다. 그런데 웬걸? 이긴 정당에서는 불출마 선언이 줄을 잇는데, 지긋지긋하게 지는 정당에서는 불출마는 고사하고 오히려 출마를 위한 공천 다툼이 무성하다. 불출마도 아니고 좀 어려운 지역에 출마하면 어떠냐는 권유조차 손사래 치고, 핏대를 세운다. 이 당에서 집권의지는 찾아보기 힘들고, 재선 욕망만 온통 넘쳐난다.

정치에서 경험은 매우 소중하다. 경륜을 무시하고 새로움만 추구한 결과 새정치연합은 엉망이 됐다. 하나의 팀으로서 정당에는 노·장·청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이 때문에 다선이라고 모두 물러날 필요는 없다. 게다가 물갈이가 능사도 아니다. 그간 숱하게 물갈이했지만 정치의 질은 좋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패의 사슬을 끊기 위해, 당원과 지지층의 분투를 촉구하기 위해 인적 쇄신은 불가피하다.

의원도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집권에 헌신해야 할 때다. 의원이 아니어도 집권을 위해 할 일은 많다. 배지(badge)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약자의 삶을 위해 정치에 뛰어들지 않았나. 그들이 지금 집권을 갈망한다. 떠나는 그들의 아름다운 뒷모습에서 집권의 희망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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