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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싸’ 사이에서는 이게 제일 ‘핫’하대.”

클릭하고 싶게 만드는 단어들로 구성된 문장이다. 이 말을 하며 링크 주소를 던진 사람과 평소 친분이 있었다면 기대감은 가중된다. 그래, 이 사람 추천이면 믿을 만하지. 배꼽 빠질 준비해야겠는걸?

그런데 웬걸. 펼쳐진 영상에 배꼽은커녕 안면 근육도 꿈틀하지 않았다. 유명 가요를 표절인 듯 표절 아닌 표절 같은, 두 번 이상 변화구 넣은 패러디로 노래하는 그 영상은 조회수가 무려 400만이 넘었고 즐거워하는 댓글들로 가득했기에, 굳은 얼굴의 나는 순간 지독히… 외로워졌다….

고독뿐만 아니다. 인싸와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일종의 위기감을 자극한다. (훗날 바뀔 수 있겠지만) 현재의 인싸는 뉴미디어에 밝고 유쾌하며 소비도 잘하는 집단이라는 이미지다. 마케터나 콘텐츠 기획자들이 인싸에 관심 갖는 이유다. 이들이 주로 관찰하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 뉴미디어는 유행의 전환 속도가 매우 빠르기에 인싸들이 지금 당장 주목하는 콘텐츠에 빨리 숟가락 얹어야 물들어 올 때 같이 노 젓는다. 적시에 적절한 비용을 투여하면 가격 대비 높은 효용을 얻을 수 있지만, 쉰 떡밥을 문다면 허튼 예산낭비를 한 게 되며, 최악의 경우 오히려 기업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 

그래서 인싸를 ‘공부’한다. 구독자나 영상 조회수가 급등한 크리에이터에 촉각을 세우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요즘 가장 뜨거운 밈을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등. 때로는 인싸들이 이미 한바탕 놀고 자리를 떠났는데 잔해를 뒤적이며 심각한 얼굴로 분석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지만, 그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인싸님들 한창 노실 때 훼방 놓는 일이 가장 큰 역린이다. 특히 캐릭터로 웃음을 만드는 유머의 경우, 굳이 해당 영상에 재 뿌리는 댓글을 달지 않는 게 통용되는 예의로 보인다. 나 때문에 흥이 다 깨지면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

온라인에서 ‘신사답게’ 침묵했던 젊은 친구들은 오프라인에서 속내를 털어놓는다. 최근 연말이라 평소보다 모임이 잦은데, 얼굴을 마주한 사람들 중 의외로 많은 이가 2019년 한 해 인싸 픽(pick)에 공감하지 못한 심정을 토로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화제가 됐던 몇몇의 이름이 오갔다. 그중 하나는 펭수였다. 구글의 2019년 인기 검색어 발표에 ‘인물 및 펭귄’이라는 카테고리가 만들어질 정도로 대한민국을 뒤집어놓은 펭귄 펭수. EBS가 발표한 세계관을 존중하며 댓글 다는 놀이가 유행했고, 그로 만든 ‘짤방’과 쉬이 마주칠 수 있었으며, MD 발매 3시간 만에 1만개가 팔려 상업성도 톡톡히 증명한 그 펭수.

나는 펭수 안의 사람이 재치 있다고 생각하지만, 펭수라는 캐릭터 디자인과 설정에 흥미 느끼며 열광하지는 못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님을 대면접촉들로 깨달아서 반가웠다. 인싸들과 함께 웃고 즐기지 못했을 때 내심 품었던 소외감이 씻겼다. 속 터놓고 얘기할 수 있고, 얼굴 맞대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야. 

새로운 것에 열려있는 태도는 현대인 모두에게 요구되지만, 재미를 못 느꼈을 때 억지로 텐션 올려 재밌는 척 어울리는 노력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안 웃겼으면 취향에 맞지 않다 인정하고, 자신을 웃게 하는 다른 것을 찾아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광활하며, 많은 것이 바쁘게 생기고 사라지는 현대사회 어딘가에, 일시적이나마 느슨한 소속감을 부여하는 ‘재미의 공동체’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인싸 놀이문화에서 ‘눈치 챙겨’야 하는 바람에 말 못한 의견도 숨김없이 나눌 수 있는 곳이라면, 개인은 시선을 벼리고 단단한 취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남는 고민은 있다. 인싸로 소문나 대세의 궤도에 오른 것들. 과대 대표성을 갖는 취향들. 데이터가 포착하지 못한 목소리와 놓쳐지는 가능성들. 그럼에도 데이터가 부족하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는 환경은 아닌지. 맥락을 이해하고 함께 느끼기보다 숫자로 증명된 결과에만 관심 두는 의사 결정자가 문화산업에 독이 되지는 않은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인싸 바깥의 목소리도 폭넓게 청취해야 할 텐데, 그것은 무엇으로 가능할지. 이런 것들을 함께 고민하고 싶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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