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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정동칼럼

윤석열의 길

opinionX 2022. 8. 1. 10:03

2027년 5월,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저성장, 사회 양극화, 부의 세습,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비정규직 차별, 청년실업, 조기퇴직, 자영업 몰락, 노인 빈곤, 저출생 등 현재 우리가 당면한 사회·경제적 문제가 어느 정도 완화되었거나 최소한 해결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될까?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고 2050년에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믿게 될까?

지금까지 봐서는 그럴 것 같지 않다. 지난 22일 장차관 국정과제 워크숍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힘이 들어도 나라의 새 도약을 위한 기틀을 바로 세워야 한다”면서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꼭 필요한 개혁 과제임에도 기득권 저항이 예상되는 것들도 많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과 공공기관 개혁 역시 피해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추상적 수준의 문제 인식과 구체적인 실행 과제 사이에 동문서답 같은 간격을 느낄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이에 앞서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2년 세재개편안에서는 ‘기득권의 저항’이 아니라 ‘기득권에 대한 저항’이 예상되어도, ‘개혁’이라는 ‘가명’으로 재벌 대기업 및 부자 감세 그리고 재벌 및 부의 세습을 용이하게 해 ‘기득권의 지속 가능성’에 필요한 기틀을 굳건히 세우겠다는 전의마저 느낄 수 있다. 이대로라면 사회 양극화와 계급화는 더욱 강화되고, 경제는 활력을 잃고, 사회문제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금산분리 완화, 장시간 노동 및 작업 안전 무시 조장, 경제범죄를 저질러도 감옥에 가지 않고 벌금만 내는 개악 등을 통해 재벌의 소원을 다 들어주겠다고 작심을 한 듯하다. 이에 반해 한국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40%’ 달성이 가능하다고 믿는 전문가는 없는 것 같다. 목표에 따른 실천 방안도 없고, 혁신적인 기술도 없고, 강력한 추진 의지를 보여줄 리더십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탄소생산성은 탄소배출 1㎏당 달러로 환산한 부가가치 생산 수준을 나타내는데, 2019년 기준으로 EU와 OECD의 탄소생산성 평균은 각각 7.02와 5.17인 반면, 한국의 탄소생산성은 3.68 수준에 불과하다. 즉 동일한 부가가치 생산을 위해 한국은 EU보다 거의 두 배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것이다.

탄소생산성이 국내총생산 나누기 탄소배출량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간단한 수학의 미분을 적용하면 ‘경제성장률 = 탄소생산성 증가율 - 탄소감축률’이라는 공식을 도출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연평균 4.17%로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하는데, 만약 이 기간 동안 현재 수준의 탄소생산성을 유지하면서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면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마이너스(-) 4.17%로 떨어지게 된다.

한국의 탄소생산성이 낮은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제조업 그것도 중화학공업 비중이 높은 한국의 산업 구조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면서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탄소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중화학공업 비중이 높은 한국의 산업 구조를 바꾸는 산업전환이 필요하다. 탄소생산성을 높이지 못하고 탄소중립에 실패하면, 고부가가치 상품을 생산하는 국내 기업들은 한국을 떠날 것이고 산업 공동화와 사회 피폐화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화학공업 기업을 핵심 기반으로 하는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는 제조업 고도화와 탄소중립을 위한 산업전환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사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노동유연성이 아니라, 소유지배구조의 유연성과 사회안전망이다.

산업전환을 용이하게 하는 재벌개혁은 또한 진입과 퇴출 장벽을 낮춰 제조업 특히 중간재 산업에 혁신 경쟁을 가져올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슘페터주의 성장이론의 예측뿐만 아니라,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우리 B2C 산업의 경험을 봐도 이는 자명하다.

윤 대통령이 다 알고서도 이러는 것이라면, 우리는 외길에 서 있는 셈이다. 그러나 모피아 출신 고위 관료와 기득권층이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이 추상적 문제 인식에 대한 해법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면, 아직 다른 길이 있다. 집권한 지 석 달도 지니지 않았다. 잘못 끼운 첫 단추를 풀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내각과 대통령실의 경제정책 책임자들을 경질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잘못된 정책의 후과에 대해서 법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으니 괜찮다는 생각은 일개 검사일 때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연재 | 정동칼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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