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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 경찰국 설립이라는 정책 이슈가 난데없이 쿠데타 논쟁으로 비화했다. 행안부 장관이 불을 질렀다. 그는 행안부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는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12·12쿠데타’라고 비난했다. 그의 발언이 뉴스를 타자 사람들이 경악했다.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아무리 마뜩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끔찍한 군사반란에 비유할 수 있나.

그도 그럴 것이 ‘12·12쿠데타’는 전두환의 신군부가 자신들의 상관 육군참모총장을 무장 병력으로 불법 납치한 하극상이 아니었던가. 이 일로 한국 민주주의는 다시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12·12를 통해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5·18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통해 정권을 손에 넣었다. 신군부는 12·12, 5·18 두 차례의 군사적 행동에 이어 1980년 5월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쿠데타를 마무리하였다.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이러한 12·12쿠데타에 빗대는 것은 도대체 사리에 맞지 않았다. 거기에 모인 총경들의 목표도, 그들의 능력도, 쿠데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행안부 장관은 한술을 더 떴다. 경찰은 물리력을 동원할 수 있어서 위험하다고 했다. 경찰이 총이라도 들고 나설 수 있는 것처럼 들리는 얘기였다.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저처럼 손쉽게 부풀리고 꾸미는가 생각했다.

과거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군부 권위주의 정권은 늘 그랬다. 작은 일을 키우고 가벼운 일을 심각하게 만들면서 반대세력을 겁박했다. 애송이 대학생 몇 명이 권위주의 정권을 비판하는 유인물이라도 돌릴라치면 공안 기관은 그들이 체제전복이라도 할 것처럼 몰아붙였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온갖 거짓과 과장을 주저하지 않았다. 남북 분단은 그런 협박을 가능하게 하는 상황을 제공했다. 정권에 대한 작은 비판조차도 적을 이롭게 한다는 이유로 배제되었다. 색깔론 뒤집어씌우기로 비판을 잠재우고 의견 다양성을 억압하는 일은 다반사로 있었다. 그것은 군부 권위주의 세력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정치적 방편이었다.

그런데 2022년, 그런 얘기가 최고위 공직자의 입에서 나올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12·12쿠데타라고 하는 행안부 장관의 말은 과거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던 색깔론 뒤집어씌우기와 궤를 같이하는 정치 문법이었다. 행안부 장관의 현실 인식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 가당치 않은 그의 비유는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쿠데타의 비유를 그렇게 한다면, 시행령 개정을 통해 행안부 경찰국을 추진하고 있는 이 정부에 대해서도 똑같은 비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그런 주장이 있다. 행안부 경찰국 신설을 지금처럼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 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전문가의 의견이 나왔다. 정부조직법 어디에도 시행령 개정으로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하고 행안부 장관에게 경찰 통제 권한을 줄 수 있다는 규정은 없으며 정부조직법이 그것을 위임한 바도 없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제1호 연구관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에서 법제처장을 맡았던 이석연 변호사는 이번 시행령 개정이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았으며 헌법과 법률에 어긋난다고 했다. 시행령은 법률에서 위임한 사항에 대해서 행정부가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므로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법률의 의미를 바꾸어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정부가 헌법과 법률을 지키지 않으면서 경찰국 신설을 서두르는 까닭은 결국은 경찰을 장악하여 정치적으로 휘두르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이 나서 국가 기강을 흔드는 일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헌법과 법률을 어기면서 경찰국을 만들어 정치적으로 장악하려는 것이라면 그 자체가 정말 쿠데타라고 할 수 있지 않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말하자면 경찰국 신설은 친위 쿠데타가 아니냐는 얘기다. 박정희 대통령이 스스로 헌정질서를 무너뜨리고 유신체제를 선포한 것이 친위 쿠데타이다. 이를 궁정 쿠데타라고도 하는데, 권력자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 스스로 헌법을 무력화하면서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가리킨다.

행안부 경찰국 신설을 이 정부의 친위 쿠데타라고 부르면 받아들이기 거북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유신체제와 같은 궁정 쿠데타를 호명하는 것도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애당초 행안부 장관이 자초한 것이므로 누굴 원망할 일은 아니다. 그러니 쿠데타 논쟁 대신 서둘러 경찰국 신설이 정말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어야 한다. 정부는 이 시행령의 공포를 보류하고 더 의견수렴을 하길 바란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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