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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28~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나토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초유의 외교 행위를 놓고 칭찬과 비판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모든 일에는 허실과 손익이 함께하기 마련이니, 겉으로만 보면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통령이 인도·태평양 지역도 아닌 유럽까지 가서 미국이 마련한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을 적대국으로 천명하고 나섰으니 보통 일이 아니고 그 뒷감당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물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고 전 세계에 전쟁 피해를 준 직접적인 죄가 있고, 중국은 우리와는 체제와 이념이 다른 국가로서 여러 면에서 위협이 되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국제질서는 현실적으로 강대국들이 자신의 국익을 확보하고 확장하기 위해 만든 질서이며, 강대국들 사이에 있는 중소국들은 강대국들의 ‘편가르기’ 압력 때문에 국익을 보호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지리는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기 때문에 지정학적·지전략적 맥락에서 강대국들이 갖는 위상과 역할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중소국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어떻게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 깊은 전략적 고민을 하게 된다.

주변 4강에 둘러싸인 우리는 강대국 정치의 영향에 의해 빈번히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민족이다. 따라서 주변 강국들과 강국 관계에 대해 당장은 어렵더라도 큰 그림, 장기적인 비전과 목표, 정책을 갖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 외교의 핵심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동북아 국가로서 언제든지 한반도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들이다. 최근세사만 보더라도 이 두 나라는 한말에 우리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해방과 분단, 6·25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까지 냉전체제의 지속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세계 G2로 올라선 중국은 경제·통상 협력을 통해 우리가 주요 분야에서 세계 7~10위의 위상으로 올라서는 데 직간접적인 공헌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에 “마드리드는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구상이 나토의 2022 신전략 개념과 만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윤 대통령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구상”으로 표현했다. 대통령실은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점증하는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 주요국인 한국을 장래 핵심 전략 파트너로 삼고자 한국을 초청했고, 한국은 그 협력방안을 논의하고자 마드리드에 왔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 연설에서 “이제는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와 역량을 갖춘 국가로서 더 큰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전 세계는 한국이 자발적으로 미국을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대적하는 데 더 많은 역할과 책임을 지겠다는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게다가 최상목 경제수석비서관은 마드리드 현지 기자 브리핑에서 “지난 20년간 우리가 누려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공언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미·중 간에 전쟁이 터진 것도 아닌데, 윤석열 정부는 왜 이처럼 빨리 미·중 간 편가르기 외교에 공식적이고 적극적으로 합류하는 결정을 한 것일까? 기본적으로 ‘이념 과잉’ 때문으로 생각한다. 이념 과잉의 문제점은 해당 문제에 대해 미리 정해진 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용주의가 설 자리가 없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에 “국정과제를 세팅하는 가운데 가장 중시해야 하는 것은 실용주의, 그리고 국민의 이익”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토 정상회의에 가서 미국의 편에 서서 중국을 적대국으로 공개 천명한 것을 보면, 실용주의와 장기적인 국익이 보이지 않는다. 당장의 이익이 되는 듯한 결정이 나중에 손해로 이어진다면 당장의 이익은 결국 진정한 이익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한·미안보협력과 한·중통상협력은 상호 대체적인 것이 아니고 상호 보완적이다. 어느 나라도 안보와 경제 중에서 어느 하나를 포기하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 외교 번영시대를 열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은 우리의 동맹국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장 중요한 나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변의 다른 나라들을 소원케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 ‘세상사는 모두 좋은 면과 나쁜 면이 함께 있으므로, 이미 닥친 어려움에 대해서는 한탄만 하지 말고 그것의 부정적 효과를 최선껏 극복하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지금이라도 장기적인 국익 확보를 위해 아무리 어렵더라도 미·중 양국에 대한 균형전략과 실용주의의 끈을 놓지 말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백학순 김대중평화회의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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