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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버리기 전까지는 복지부, 버린 후엔 경찰.” 제75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작이자 남우주연상 수상작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에서 극중 형사인 ‘수진’(배두나)이 한 말이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버린 엄마를 탓하기 전에 왜 엄마를 돕지 못했냐고 묻는 ‘이 형사’(이주영)의 물음에 대한 대답. 이들의 대화는 아이가 완전한 돌봄을 제공받고 보호자는 아이를 양육하는 데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 책임이 정부에 있음을 드러낸다. 보건복지부든, 경찰이든 말이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해외에서 큰 관심을 받고, 권위 있는 상을 받을 때면 ‘K국뽕’이라고 해도 관심이 갔다. 만듦새와 별개로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작품 내용들이 ‘자랑’거리는 아니어서다. 넷플릭스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빚에 쫓기는 사회적 약자들을, <지금 우리 학교는>는 좀비처럼 사라지지 않는 학교폭력에 노출된 10대를 다룬다.

법을 만드는 정치인, 정책을 만들어 실행하는 공무원은 이런 ‘K콘텐츠’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공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K콘텐츠 성취에 박수만 치고 있을 게 아니라, 그다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이런 요구는 과한 것일까. 이런 사례도 있다. 지난 2월 정부가 발표한 ‘가족 돌봄 청년(영 케어러) 지원대책 수립 방안’ 자료를 보면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사례로 언급된다. 건설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부모가 남긴 사채와 할머니 부양을 감당하는 극중 ‘지안’(이지은)이 장기노인요양보험이라는 기존 제도를 몰라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음을 짚는다. 정부는 병원·학교 등을 통해 가족 돌봄 청년 발굴체계를 강화겠다고 했다.

<브로커>의 경우, 영화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베이비박스 이전의 문제’에도 관심과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미혼모 단체들로 구성된 위기임신출산지원네트워크는 지난 14일 입장문을 내고 “<브로커>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만 우리 사회에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아기가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상황을 막기 위한 노력”이라며 “우리 사회는 청소년에게 피임방법을 제대로 알려주어야 하고, 여성에게 임신중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출산과 양육에 대한 상담과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일 이 영화를 보고 “생명의 소중함과 생명을 지키는 일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해야 된다는 그런 좋은 메시지를 주는 영화”라고 했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17일 <브로커>를 관람하면서 “한부모가족을 포함한 다양한 가족이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녀를 키울 수 있도록 살피겠다”고 했다. 관련 단체는 <브로커> 속 문제가 전부가 아니라는데, 대통령의 감상평에서는 정책 고민은 안 보인다. 여가부 장관이 나서 한부모가족을 챙기겠다고 했지만, 여가부는 폐지할 것이라고 한다. 대통령과 장관이 화제작에 축하를 보내고 감상평을 내놓고, 그것대로 관심을 받았다. 이후 정부의 책임 있는 정책 추진으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김향미 정책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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