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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유 회사에 입사를 한 지 한 달 만에 진만은 사표를 내고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뭐야, 잘린 거야?”

편의점에서 퇴근하고 돌아온 정용은 진만을 보자마자 바로 그 말부터 했다. 진만은 양말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어쩐지 몸이 조금 홀쭉해 보였다. 얼굴은 거무튀튀하게 변해 있었다.

“아니야. 내가 스스로 관둔 거야.”

진만은 몸을 반쯤 일으켰다가 도로 자리에 누웠다. 끙, 작게 신음도 냈다. 그는 한 달 동안 모텔 생활을 하면서 우유 판촉 행사만 하다가 돌아왔다. “어머니, 우유 하나 드세요. 어머니, 이젠 어머니 뼈도 생각하셔야죠.” 진만은 낯선 도시에서 한 달 내내 그 말만 입에 달고 살았다. 처음엔 ‘어머니’라고 부른다는 것이 ‘어머나’로 잘못 발음해서 함께 판촉 활동을 하던 김 과장에게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진만을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모텔 생활이었다. 그는 김 과장과 같은 방을 썼는데, 모텔의 구조상 퀸사이즈 침대에 김 과장과 나란히, 같은 이불을 덮고 잘 수밖에 없었다. 진만은 최대한 침대 가장자리에 붙어서 잤다. 자고 일어나면 늘 목 부위가 뻐근하고 아팠다. 김 과장은 잠들기 전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잤는데,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었다. 친화력은 또 얼마나 좋은지 모텔 옆방에서 생활하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과도 자주 어울렸다. 어떤 날엔 진만이 있는 방으로 한국 사람, 베트남 사람, 중국 사람, 몽골 사람이 모두 모여 TV를 크게 틀어놓은 채 술을 마시기도 했다. 진만은 침대에 앉아 멀거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 이게 무슨 아세안 경제장관회의인가, 왜 저 베트남 친구는 저리도 순대를 잘 먹는 것인가.

“나, 몸이 안 좋아.”

진만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가?”

“열도 나고, 목도 아프고….”

“감기인가 보네.”

정용은 추리닝으로 갈아입으면서 무심하게 말했다. 진만이 돌아왔으니, 이제 한 사람은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야 했다. 까짓것, 내가 자지, 뭐. 정용은 그렇게 양보했다.

“나, 그거일지도 몰라….”

진만은 그러면서 자신이 전염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중국 사람과 몇 번 접촉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얼른 자라. 우리 편의점에도 하루 대여섯 명씩 중국 사람들 꼭 온다.”

“아니야. 나 진짜 심각하다고. 몸에 힘도 하나 없고, 막 어지럽고 그래… 나 사실… 자가격리하려고 회사 그만둔 거야.”

“자가격리?”

진만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린 방도 하나뿐인데?”

정용은 그렇게 말하면서 또 한편 ‘자가격리’라는 단어가 참 이상한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기 집도 없고, 자기만의 방도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자가격리를 하는가? 뭐, 마음으로 하는 건가?

“그러니까 네가 더 조심하라고….”

이게 무슨… 정용은 대꾸하지 않고 욕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다음날 오전, 진만이 계속 소리 내 기침을 하자, 정용도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병원부터 가봐. 괜히 걱정하지 말고.”

“갔다가 정말 전염병이면 어쩌라고.”

“어쩌긴? 치료받는 거지.”

정용의 말에 진만은 잠깐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다시 말했다.

“조금만 더 버텨 보고… 아닐 수도 있으니까.”

정용은 그날 평상시보다 일찍 자취방에서 나왔다. PC방이라도 갔다가 편의점으로 출근할 작정이었다. 그러면서 오늘은 아예 찜질방이라도 가서 자는 게 어떨까, 생각했다. 그게 서로에게 더 나은 거 아닌가? 진만이 자가격리할 수 있도록… 그러다가 정용은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건 속이 너무 뻔히 보이는 짓이 아니던가? 옮았으면 벌써 옮고도 남았을 텐데, 이제 와서 자가격리는 무슨… 정용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전염병이 자꾸 들춰내는 것만 같았다. 마음을 들키는 것만 같았다. 그게 불편하고, 또 화가 났다.

정용은 편의점에서 퇴근하자마자 체온계와 마스크, 생수와 컵라면들을 사 들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진만은 어디서 구했는지 이미 마스크를 한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손에는 위생장갑을 끼고 있었다.

“뭐 좀 먹었어?”

정용도 마스크를 쓴 채 물었다.

“응. 컵라면하고 삼각김밥.”

“왜? 뭐라도 시켜 먹지?”

“한 그릇을 어떻게 시켜….”

진만은 계속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정용은 체온계를 천천히 진만의 귀에 가져갔지만 이내 손을 거두었다. 진만이 몇 번 기침을 했기 때문이다.

“돼지들은 말이야….” 

기침이 잦아들자 진만이 입을 열었다. 

“구제역 같은 전염병이 돌면 그냥 다 파묻어버리잖아. 옆에 있는 애들까지 싹 다….”

정용은 대꾸하지 않고 다시 조심조심 진만의 귀에 체온계를 넣었다.

“걔네들은 왜 격리시키지 않고 다 묻어버리는 걸까? 그게 돈이 덜 드나…?”

진만이 베고 있는 베개에선 시큼한 땀 냄새가 났다. 그러겠지, 아마도 돈이 덜 들어서겠지. 정용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정말 정말 못됐어. 그치?”

진만이 그렇게 말했을 때, ‘삐’ 하고 체온계가 소리를 냈다.

36.7도. 

정용은 체온계를 바라보다 마스크를 풀었다. 진만도 힐끔 체온계를 바라보았다.

“너도 참 네가 못났다고 생각하지? 그렇지?”

진만은 계속 웅크린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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