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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진만은 며칠째 자취방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빈둥거리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러다가 뭐 미래만 아니면 나쁠 것도 없겠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언제나 미래가 문제였지, 미래라는 것들 때문에 열 받았지. 망할 미래 같으니라고.

곰곰이 따져보니, 진만은 ‘미래’라는 이름 자체와도 좋지 않은 기억뿐이었다.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진만의 고등학교 동창 중엔 ‘미래’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도 있었다. 진만이 살던 도시에서 꽤 유명했던 ‘미래내과의원’ 원장의 첫째아들인 ‘최미래’. 나중에 병원을 물려줄 생각으로 아버지가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는데, 그 덕분이었는지 몰라도 미래는 공부를 꽤 잘했다. 선생님들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뭐 나중에 병원을 물려받으려면 어쩔 수 있나요”라고 말하기도 했고, 친구들이 장난 삼아 부르던 ‘최 원장’이라는 별명을 내심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최 원장, 그러지 말고 괜찮은 원무과장 한 명 미리 뽑아놓을 생각 없는가? 자네만 괜찮다면 내 대학 입시 포기하고 미리 회계원리 공부만 죽어라 하겠네. 미래는 친구들의 그런 농담을 웃으면서 받아주기도 했다. 

미래는 공부도 잘했지만, 체격도 좋았고 운동도 잘했다. 씀씀이도 나쁘지 않아서 친구들이 많이 따랐다. 진만 또한 미래와 함께 김밥천국에 가서 밥을 먹은 적이 몇 차례 있었다. 돈가스를 먹을 것인가, 아니면 오백원을 더 내고 라면과 김밥을 먹을 것인가, 한참을 고민하느라 메뉴를 정하지 못하는 진만에게 미래는 “뭐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어? 김밥천국 따위에서”라고 아무런 악의 없이 툭 내뱉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창피하고 수치스럽게 다가왔는지, 진만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장면이 불쑥불쑥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또 하나. 진만의 기억 속에 남은 미래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때 학교 식당이 내부공사에 들어가 문을 닫은 적이 있었다. 반마다 급식 당번을 정해 밥이니 국이니 직접 가져와야 했는데, 진만의 반에선 늘 미래가 그 일에 끼었다. “선생님, 이건 공정하지가 않은데요?” 사흘 연속 급식 당번을 했던 미래가 담임에게 항의했다. “뭐가?” 담임이 묻자 미래도 눈길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4교시 수업 끝나기도 전에 가야 하는데 매번 제가 당번이니까요.” 그러자 담임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최미래. 원래 동등하지 않은데 동등하다고 말하는 건 나쁜 거야.” 하필 그날은 진만이 미래와 짝이 되어 급식 당번을 맡은 날이었다. “좆밥 같은 기간제가….” 미래는 국이 가득 든 들통을 진만과 함께 나르다가 이렇게 말했다. “기간제들이 겁이 없어, 겁이.” 미래는 계단 앞에서 쉴 때 카악, 퉤! 들통에 침을 뱉기도 했다. “너 오늘 국 먹지 마라. 개새끼들, 다 똑같은 새끼들이야.” 진만은 그런 미래에게 화를 내지도, 뭐라 말하지도 못했다. 동등하지 않았으니까. 진만은 나중에야 그렇게 자신의 행동을 변명했다.

진만은 또 다른 ‘미래’를 대학교 3학년 때 만났다. 군 제대 후 부랴부랴 복학하느라 급하게 구한 학교 근처 단독주택 이층 방에서 자취를 했는데, 그때 거기에서 미래를 만났다. 미래는 주인집에서 키우는 조그마한 누런색 믹스견이었다. 대문 옆 목련나무 아래 합판으로 만든 집이 있었고, 거기에 쇠줄로 묶여 지냈다. 일흔이 넘은 주인집 할아버지는 미래를 몹시 예뻐했는데, 미래 역시 할아버지만 보면 마치 여름 성경학교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거의 졸도할 것처럼 좋아했다. 

단, 미래는 그 외 사람들은 개만도 못한 취급을 해댔다. 그 집에는 진만 말고도 모두 네 명의 세입자가 살고 있었는데, 미래는 그들이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정말이지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우박처럼, 쉬지 않고 맹렬히 짖어댔다. 밤이나 낮이나, 자기 말만 해댄 것이었다. 

한번은 아래층에 사는 사십대 아저씨가 자정 넘어 들어오다가 또다시 사납게 짖어대는 미래와 맞부닥뜨린 적이 있었다. 아저씨는 술이 불콰하게 오른 상태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야, 이 개놈의 새끼야, 네가 미래라고? 이 개 같은 미래야. 짖기만 할 줄 아는 놈의 새끼가….” 아저씨는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한 채 계속해서 미래와 말싸움을 해댔다. 

방마다 불이 켜지고 이윽고 주인 할아버지가 마당으로 나왔다. 주인 할아버지는 대뜸 세입자 아저씨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자네 왜 우리 미래한테 뭐라고 그러는가? 얌전하게 잘 있는 미래가 뭘 잘못했다고? 응!” 진만은 방 밖으로 나가서 세입자 아저씨를 돕고 싶었지만, 말 한마디라도 보태고 싶었지만, 그저 가만히 누워 있기만 했다. 어차피 결론은 뻔했으니까. 주인 할아버지에게 세입자는 개만도 못한 처지였으니까….

진만은 그런저런 기억을 떠올리다 자취방에서 함께 사는 정용에게 불쑥 말을 건넸다.

“난 말이야. 그래도 미래 생각만 안 하면 나쁘진 않은 거 같아.”

“그게 뭔 소리야?”

정용이 양말을 개면서 물었다.

“그냥 미래만 생각하면 더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 안 한다고 올 게 안 오냐?”

“그래도 기분은 덜 나쁘니까.”

정용은 슬쩍 진만을 보다가 이번엔 수건을 개면서 말했다.

“그냥 견디는 거지. 나쁜 걸 견뎌내는 게 민주주의래.”

진만은 뚱한 표정으로 정용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진만은 정용과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걸 바로잡지는 않았다. 이 미래나 저 미래나 나쁜 걸 견디는 건 어차피 똑같으니까. 그러면서도 진만은 마치 수능 금지곡처럼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개 같은 미래, 개 같은 미래, 개 같은 미래. 그제야 미래가 조금 우스워졌다.

<이기호 |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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