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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다양하고 보편적이고 또 뿌리 깊었다. 서울시와 함께하는 시민대학 글쓰기 가을학기. 강좌가 후반부로 접어들면 사회적 분노를 주제로 에세이를 쓴다. ‘한국사회의 (  )이 나를 분노하게 한다.’ 괄호 안에 들어가는 것은 이른바 한국병에 해당하는 고질적 문제들이다.

이번에도 교육 현실을 비롯해 종교, 고령화, 영세 자영업, 사생활 침해, 취업난, 시민운동 등 우리 주변에서 수시로 목격되는 이슈들이 등장했다. 수강생 대부분이 중년 여성이어서 그런지 교육 문제에 대한 비판이 압도적이었다. 학교폭력에 이어 정답만 강요하는 교육, 오로지 입시와 취업을 위한 공부. 자신의 경험에 바탕한 수강생들의 글은 진솔하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특히 영·유아를 소비 대상으로 삼는 교육 시장이 두드러졌다. 일부 부유층에서는 생후 9개월 된 아이에게 과외를 시키는가 하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영어학원 10개가 생기면 소아정신과 한 개가 늘어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비뚤어진 어른들의 욕망이 아이들의 미래를 망친다는 내용의 글은 어린이놀이 운동가 편해문씨의 권고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편해문씨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반드시 되돌려줘야 할 세 가지가 있다고 강조한다. 안전하게 놀 수 있는 장소, 마음껏 놀 수 있는 시간, 함께 놀 수 있는 친구. 그런데 이 세 가지 요건은 아이들뿐 아니라 이 시대 모든 연령대에 필수적인 것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좋은 장소와 의미 있는 시간,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절실하다. 나는 이 세 가지가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절대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분노를 함께 읽는 8주차 강의실은 분위기가 무거웠다. 검은 색안경을 끼고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색안경을 벗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의 인지 능력은 한계가 분명하고 또 우리의 의식과 외부 세계는 평면이 아니다. 입체다. 안타깝게도 우리 눈은 입체를 한꺼번에 다 볼 수가 없다. 관점을 여러 차례 이동해야 한다. 그래서 안경 색깔을 바꿔보기로 했다. ‘내가 아는 멋진 사람’을 주제로 에세이를 쓰기로 했다.

지난 11월29일, 9주차 강의실은 모처럼 밝았다. 평생 나무를 심어온 예수회 신부님,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젊은 학자, 여고 동창생을 위해 헌신하는 중년 여성, 30년 넘게 어머니처럼 보살펴주는 비구니, 중학교 때 만난 가야금 선생님, 뒤늦은 나이에 직종을 바꾼 직장 선배, 농성장은 물론 마을 대소사를 해결하는 만능 일꾼, 아프리카 오지에서 활약하는 젊은 여선교사, 평생 한글 글꼴을 개발해온 선생님, 지속가능한 마을 만들기에 투신한 활동가, 한국 역사를 사랑하는 중국 대학 교수 등등. 분노의 대상 못지않게 멋진 분들의 삶도 다채로웠다.

수강생들로부터 호응을 받은 멋진 사람 중 하나가 꽃집 총각이었다. 이 총각은 화초를 팔고 나서도 세심하게 사후 관리를 한다. 전화를 걸어 정기적으로 나무 상태를 점검한다. 심지어 직접 방문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글은 프로의 아름다움을 환기시키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이 글을 쓴 분은 “글을 쓰면서 제 삶 곳곳에 고마운 사람들,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의 후기는 서로 다르지 않았다. 다들 멋진 사람이 있어 든든하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엄마가 있듯, 누구에게나 멋진 사람이 있다. 수강생들의 글을 읽으면서 올 한 해 내가 만난 멋진 사람을 떠올렸다. 지리산에서 사진가로 거듭난 시 쓰는 친구, 자기 산문집에 ‘울어요, 우리’라고 서명해주는 시 쓰는 후배, 창간 10주년을 남다르게 기념한 시사주간지 후배들, 융복합 학과 설립을 주도한 젊은 교수님, 북한학대학원에 들어간 영문학자, 생태환경 전문지에 적지 않은 기금을 쾌척한 선배, 경복궁 옆 그 비싼 땅에 심야책방을 낸 친구, 재건축아파트 부지에 남겨진 나무들을 기억하자는 작가들. 내게도 멋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

송구영신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고 또 해마다 다를 것이다. 시민대학 글쓰기 덕분에 한 해를 마무리하는 괜찮은 방법을 하나 터득했다. 한 해 동안 내가 만난 멋진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고마운 사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사람, 찾아뵙지 못해 고개를 들 수 없는 선생님, 존경하는 분, 닮고 싶은 전문가가 있다. 그뿐이랴,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친구와 선후배도 있다.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멋진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기만 해도 한 해의 비망록은 궁색하지 않을 것이다.

분노와 멋진 삶은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연관성이 없지 않다. 사회적 분노를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시키면 멋진 삶이 된다. 그래서 멋진 사람들은 저마다 1인 혁명가다. 지난 세기 중반, 미국의 기독교 아나키스트 애먼 헤나시는 뉴욕 한복판에서 1인 시위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없겠지만 세상 또한 나를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시민대학에서 읽은 멋진 사람들, 그리고 지난 한 해 내가 만난 멋진 사람들이 그러했다. 다른 자리에서 몇 번이나 강조했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보다 세상에 의해 바뀌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그런 멋진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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