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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알려진 것이 좋은 헌법재판관 후보로 꼽힐 이유일까. 미국에서는 그럴 수 있다. 유능하고 유명한 변호사가 판사가 되고 대법관이 되는 나라다. 서굿 마셜 전 연방대법관은 흑인 인권운동을 대표했다. 그 유명한 1954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도 그가 이끌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은 여성차별과 싸웠다. 여성에게는 주거수당을 주지 않던 공군의 관행을 없앤 1973년 ‘프론티에로 대 리처드슨’부터 수많은 사건을 변론했다.

우리나라 사정은 조금 다르다. 법관의 업무량이 세계 최고다. 그래서 성실함과 사명감이 필요했다. 수재들을 뽑아 20대에 판사를 시키는 제도는 그래서 유용했다. 대법관 업무도 격무여서 법관 출신이 아니면 해내기 어렵다는 얘기도 틀리지 않았다. 이런 우리나라에도 미국식 사례가 있기는 하다. 김선수 대법관이 그렇다. 노동법 이론과 실무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였다. 하지만 드문 경우다. 변호사들로 재판관과 대법관을 모두 채울 수는 없다. 더구나 미국의 마셜도 긴즈버그도 판사를 하다가 대법관이 됐다. 결국 재판은 법관이 한다. 가능하면 판사가 대법관이 되는 게 순리다.

우리나라에서 재판관과 대법관이 된 판사들은 법원에서 유명한 사람들이다. 법원에서 알려진다는 것은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되는 일이다. 가령 김상환 대법관이 원세훈 사건을 유죄로 선고해 평가를 받은 것도 당시 서울고법에 있었기 때문이고, 유남석 헌재소장도 인권문제에 정통하지만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고 법원장이 되면서 재판관 후보군에 들어갔다. 이렇게 보면 판사로서 좋은 결정을 많이 해서 대법관과 재판관이 됐다는 신화가, 사실은 사법연수원 성적이 남들보다 좋았고 이후 법원장들에게 잘 보였다는 말로도 바뀐다. 

이제 사법연수원 졸업생을 성적으로 추려 판사로 뽑는 제도도,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선발하는 제도도 없어졌다. 초임 판사는 10년 경력 법조인 가운데 뽑고,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선택의 문제로 바뀌었다. 앞으로 어떤 판사 가운데 재판관과 대법관을 뽑을지 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이미선 재판관 후보자가 등장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내정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헌법기관의 여성 비율이 30%를 초과하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된다.” 여성이 30%를 넘는 헌법기관이 수두룩해 사실도 아니지만, 그게 이유라면 다른 여성이라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미선 재판관의 이력서에는 눈에 띄는 판결이 없다. 고등부장을 안 해서만은 아니다. 2015년 수원지법 부장판사가 됐지만 단독재판을 했다. 거듭해서 휴직하다 올해 봄에야 서울중앙지법 재판장이 됐다. 이력이 없는 이유 가운데 오랜 대법원 재판연구관 생활이 있다. 5년이나 했다. 남들의 2배다. 그래서인지 청와대도 “재판연구관 시절부터 꾸준히 노동법 분야에 대한 연구를 했다”는 것을 사실상 유일한 임명 이유로 밝혔다. 하지만 그가 노동법을 연구한 이유는 노동조였기 때문이다. 상사조였다면 상법을 연구했을 터다. 게다가 연구관은 판사가 아니다. 대법관이 원하는 보고서를 만들 뿐이다. 그래서 그가 통상임금 사건에서 노동자에게 불리한 보고서를 썼다고 시비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미선 재판관은 기업의 소유자(주주)이다. 그의 수십억원대 주식투자는 윤리적으로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자유시장 경제질서가 우리 헌법의 이념이다. 다만 주식투자는 자본의 이윤 추구를 응원하면서 돈을 버는 일이다. 당연히 노동생산성이 낮은 기업에 투자할 수 없다. 부가가치는 21세기에도 노동자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게임회사와 금융회사에서 과로로 숨지는 노동자가 많은 이유도 별다른 게 아니다. 배당과 차익이 전제인 주식투자는 사회사업이 아니다. 이제까지 이미선 재판관의 노동감수성은 드러난 바 없지만, 자본에 기울어진 사회경제적 정체성은 부정하지 못한다. 

이미선 재판관은 이발사의 딸이고 지방대(부산대)를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판사이고 남편은 대형로펌의 파트너 변호사이다. 수십억원대의 자산을 보유한 자산가이기도 하다.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합치면 상위 0.01%에 들 것이다. 어려서 이발사의 딸이었다는 지위, 지방대를 졸업했다는 학벌을 더 이상 팔아서도, 팔리도록 방관해서도 안된다. 겸양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어쩌면 부도덕에 가깝다. 

보수 언론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을 대부분 바꾸고, 좌파 일색으로 채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988년 개헌 이후 대통령들은 모두 대법원장 1명과 대법관 11~13명, 대통령 몫 재판관 3명을 임명해왔다. 특별히 많지도 적지도 않다. 좌파 일색인지는 모르겠으나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사법기관에 자기 색을 입히려고 정권을 잡는 것이다. 미국도 독일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재판관과 대법관 후보들을 얼마나 알고 임명하는지 의심된다는 것이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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