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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중산간(中山間)’이라는 독특한 지대가 있다. 완전한 산골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변은 더더욱 아닌 어중간한 산간인 곳이다. 이 중산간 마을마다 공동으로 이용하는 목장들이 있다. 이곳에는 원래 고려시대 몽골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조랑말을 기르던 ‘탐라목장’이 있었다. 조선 숙종 때에는 이곳을 10개의 목장으로 확대 개편해 2만여필의 말을 길렀다는 기록이 보인다. 군마의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반은 초지이고 반은 곶자왈인 이 드넓은 초원은 제주 사람들이 소와 말을 방목하는 곳으로 이용됐다. 소와 말로부터 밭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긴 돌담(잣성)을 쌓았고, 쇠테우리와 말테우리라고 불리는 목동들이 소와 말을 키우는 특유의 목축문화가 형성되었다. 중산간은 물론 인근 해안마을 주민들까지 소와 말을 먹이던 삶의 터전이자 목축공동체의 현장이 바로 이 마을공동목장이다. 

최근 제주에 개발 바람이 불면서 공동목장이 그 타깃이 되고 있다. 골프장이나 위락시설 등 대규모 개발 부지로 팔려나가고 있다. 2007년 67곳(7253㏊)이던 마을공동목장은 현재 52곳(5832㏊)으로 줄었다. 일제가 공유지를 주민들에게 불하한 것이 그 후손인 조합원들의 소유권으로 이어졌는데, 최근 땅값이 오르자 조합원들이 목장을 팔아치우는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 개발자로서는 한꺼번에 대규모 부지 확보가 가능하다는 이점도 공동목장의 해체를 부추기고 있다. 

제주도가 마을공동목장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천년에 걸쳐 형성된 유·무형의 문화유산이니 보존할 가치는 충분하다. 원형을 제대로 복원하면 세계 어느 곳의 목축문화보다 훌륭한 콘텐츠가 될 것이다. 검은 현무암으로 길게 이어 쌓은 모양 때문에 ‘흑룡(黑龍)’으로 불리는 제주의 밭담이 이미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된 바도 있다. 문제는 사유재산권이 침해받을 것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반대이다. 하지만 공동목장은 조상들의 피땀이 어려 있는, 그리고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마을 사람이면 누구나 사용해온 공동자산이다. 특정인의 소유물이라기보다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할 공동의 유산이다. 무엇보다 제주의 자연이 더 이상 훼손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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