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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에 들어서면서 우리가 이렇게 말이 없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라가 조용하다는 건 아니다. 사실은 아주 소란스럽다. 상대 정파의 지지율을 1%라도 낮추기 위해 혹은 자기 콘텐츠의 구독자 수를 한 명이라도 늘리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글을 써대고 영상을 제작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모두가 ‘좋아요’와 ‘싫어요’를 원하는 한가한 말들뿐이다. 내가 행방을 찾고 있는 것은 생존 위기에 처한 ‘우리들’의 말이다. 도대체 이 겨울을 어떻게 날 것인지. 아니, 그 전에 어떻게들 살고 있는지. 한탄이라도 함께 했으면 좋겠는데 말을 나눌 사람도, 기회도 없다.

이 겨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론 당국으로부터 지침은 받고 있다. 매일 신규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통보받고, 거리 두기 단계가 어떻게 조정되었는지를 통보받는다. 가게 영업시간을 통보받고, 몇 명이 모일 수 있는지를 통보받고, 우리들의 품행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통보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포고령이지 말이 아니다. 대답할 수도 없고 대답이란 게 애초부터 의미가 없는 말이다. 우리가 대답을 하든 말든 상관이 없는 말, 토를 달 수 없는 말, 사물들이 법칙을 지키듯 그저 따라야만 하는 말은 말이 아니다.

서구 언어에서 ‘동사’(verb)는 본디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말’은 ‘동사’다. 말이란 움직임에서 나오고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정된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 속에서는 말이 생겨나기 어렵다. 명령과 통보, 지침은 공기를 얼어붙게 한다. 그리고 공기가 얼어붙는 곳에서는 말이 싹틀 수 없다. 지금 우리 처지가 그렇다. 속수무책의 상황, 극단적인 수동의 상황에서 별말 없이 이 겨울을 맞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못 버텨낼 계절
우린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지내는지, 지낼지…
가능한 여러 곳에 말해야 한다
고분고분 해선 봄은 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들’ 중 상당수는 이런 식으로는 겨울을 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지난겨울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첫 번째 주검들을 보았다. 시설에서 말을 빼앗긴 채 오랜 시간 격리된 채로 지내온 장애인들이었다. 지난봄 우리는 장애인 자식을 죽이고 자살한 어머니도 보았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학교와 복지관이 문을 닫고 활동지원사조차 일을 그만두자, 어머니는 확진자도 아닌 자식을 죽이고 자신도 따라 죽었다. 그런데 다시 겨울이 오고 있다. 장애인들을 비롯해 우리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이 버텨낼 수 없는 계절이 오고 있다. ‘그냥 버텨보자’는 말은 그냥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의 말이다. 그리고 이들의 버틸 수 있는 삶은 사실 버틸 수 없는 사람들을 방치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무섭다. 이 겨울, ‘방콕’의 요령을 가르치는 사람들, 집에서 혼자 즐길 수 있는 영화, 혼자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소개하는 사람들이 무섭다. 심지어는 정치적 다툼을 중계하는 데 온 지면을 쓰는 언론들이 무섭다. 제 자신은 이 겨울을 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고는 ‘모두 버텨보자’며 무책임한 말을 흥청대는 사람들이다.

이 겨울, 우리들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어떻게 지낼 생각인지, 어떻게 해야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가능한 한 여러 곳에서 말을 해야 한다. 고분고분해서는 이 계절을 무사히 넘기기 어렵고, 이 겨울을 이대로 보내면 봄날에도 우리들의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필요한가. 도미야마 이치로의 <시작의 앎>(문학과지성사)에서 그것을 찾았다. 바로 ‘난로’다. 1960년대 말 독일 하이베르크 대학 의학부의 정신과에는 ‘사회주의 환자동맹’이라는 단체가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다초점적 확장주의’라는 말을 내놓았는데, 여기서 ‘초점’(Fokus)이라는 단어가 흥미롭다. 이 단어는 한편으로 정신병의 병소로서 접근이 ‘금지’된 영역을 나타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로서 ‘난로’를 나타내기도 한다. 도미야마에 따르면 이들은 금지된 곳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난로)로 만들었다. 배제와 폭력의 장소에서 함께 ‘방어태세’를 구축한 것이다. 아마도 지난봄 모두에게 격리 명령이 내려졌을 때, 이런 식으로는 중증장애인들이 살 수 없다며, 기꺼이 공동격리, 동행격리를 택한 장애활동가들과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겨울, 우리 사회 곳곳에 ‘금지=난로’를 피우자. 말들이 얼어붙은 곳에 난로를 놓고 공기를 데우자. 당국의 지침만이 존재하는 곳에 말들의 장소를 확보하자. 작게라도, 마스크를 쓰고서라도(마스크를 쓰고 작게라도), 사회관계망서비스상에서라도 함께 모여 말을 나누자. 함께 방어태세를 구축하자.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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