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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생산성 낮은 만화가”라고 소개한 최규석씨가 1985년에 제작된 가족계획협회의 광고를 찾아내어 트위터에 올렸다. “셋부터는 부끄럽습니다”라는 제목을 단 이 광고는 형제 많은 집안의 자식들이 학교에서 수모를 당하는 내용을 한 컷짜리 만화로 전한다. “형제가 몇이냐”는 교사의 질문을 받고 손가락 하나 또는 둘을 내민 급우들 곁에서 손가락 셋을 내민 한 학생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한다. 정부가 국민을 그런 식으로 “협박했던 그 때나, 외동은 성격이 더러울 것이라고 협박하는 지금이나 국민을 대하는 방식은 동일”이라고 최규석씨는 이 광고 만화에 짧은 논평을 했다.

최규석 트위터 갈무리


사실상 산아제한정책과 다르지 않았던 그 시대의 가족계획정책과 관련해서 내게도 몇 가지 기억이 남아 있다. 한 텔레비전 방송의 낱말 맞추기 게임에서다. ‘산아제한’이라는 정답을 놓고 사회자가 “사람들이 좀 없어져야 해요”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이름 난 탤런트이기도 한 이 사회자는 나중에 이회창씨가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그 선거운동원이 되어 열성을 좀 지나치게 뽐내는 바람에 크게 빈축을 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더 크게 비난 받아야 했을 저 발언은 어떤 물의도 일으키지 않았다. 나라가 ‘옳다’고 하는 일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의 ‘작은 잘못’을 누가 비난할 수 있었겠는가. 아니 그 잘못이 보이기라도 했겠는가.

덕수궁 앞에는 거대한 지구의 탑이 서 있었다. 지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검은 색을 칠해 놓은 사람들이 엉켜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마치 지옥에서 한 단의 파뿌리를 붙들고 밖으로 나가려는 유령들처럼 서로서로 다리를 밧줄처럼 붙들고 지구에 매달렸으며, 몇몇 덜 악착스러운 사람들은 나무뿌리 하나도 붙잡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물론 그 지구의 탑이 표현하고 있는 형상은 과학의 기본법칙에도 어긋나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 참혹한 광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자신만은 저 탈락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조급함밖에 다른 생각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으리라. 사람들이 어찌 서로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구의 탑은 가족계획정책을 홍보하기도 전에 사람들 사이에 증오심도 부추겼다. 정책이 출산장려로 방향을 바꾼 후 아비규환의 지구의 탑은 사라졌지만 이 증오심까지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서로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인간들이 갑자기 서로 귀하게 보일 수는 없다.

최근에 교육부총리는 교육에서 차지하는 인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대학입시에도 인성검사를 끌어들이겠다는 뜻을 비쳤다. 훌륭한 인성을 기르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의 도덕심은 육체가 쇠해가는 사람들에게 늘 염려스러운 것이어서, 윤리교육을 염두에 둔 인성교육의 주제는 누가 그 말을 꺼내기만 해도 그 사람을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인성이 황폐해진 것은 교육의 잘못에만 그 탓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교육으로만 그것을 교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날의 가족계획정책과 관련된 위의 세 가지 일화만으로도 그 점은 너무도 명백하다. 벌써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를 세 번째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교육과 의료의 모든 혜택에서 배제시켰던 정부의 처사보다 더 인성에 어긋난 것을 찾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좀 없어져야 해요” 같은 막말이 무엇을 배경으로 감히 발화될 수 있었을까. 지구에 몸을 붙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아비규환에서 헤매는 축생으로 제시된 마당에 인간들에게 인성이라는 말이 가당하기나 한 것인가. 지금 외동으로 자란 아이는 그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려는 사람들은 그 협박의 말이 수많은 외동아들 외동딸들의 인성에 어떻게 작용할지를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았을까. 나라는 이렇게 인성을 배반해 왔다.

인성교육이란 폭넓게 말하면 인문학교육이고, 인문학이란 결국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려는 생각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르는 공부다. 사람은 산업역군이기 전에 사람이고 국가의 간성이기 전에 사람이다. 어떤 정책이나 정치적 이념에 맞게 사람을 교양하려는 시도는 벌써 사람을 배반한다. 사람이 국가나 제도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제도가 사람을 위해 있다는 것은 지극히 명백한 진실이고, 그래서 잊어버리기 쉬운 진실이다.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국정교과서로 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혹시라도 부총리의 마음속에 있다면, 그는 자신의 인성부터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황현산 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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