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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 책방골목 이야기를 하다가 일기 쪽으로 이야기가 흘렀다. 서점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자. 어릴 적에 집에 책이 없다 보니, 가장 부러운 집은 책이 많은 집이었다.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의 집은 대본소였다. 학교 정문을 벗어나 조금만 가면 문방구를 파는 가게가 있었고, 가게의 한쪽 벽면은 책으로 가득하였다. 대본소를 겸했던 것이다. 책을 한없이 볼 수 있는 그 친구가 부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 그런 행운을 외면하는지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친구의 대본소에 갔더니 어떤 사람이 와서 책을 찾는데, 친구는 그 책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모르고 허둥대었다. 내가 즉시 책의 위치를 손으로 가리키자 친구는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아느냐고 되물었다. 그 책의 위치만 아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벽면 가득한 책의 위치를 거의 다 알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우습다. 중학교 동창의 이름은 거의 다 잊었지만, 그 친구의 이름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이 난다.
서점은 동네 어디에도 있었다. 출판업의 규모가 크지 않아 진열할 책도 적었기에 서점의 규모도 따라서 크지 않았지만, 그래도 거리마다 동네마다 서점은 있을 만한 곳에는 다 있었다. 또 서점은 좀 점잖은 직업에 속하였다. 대학 다닐 때 학교 앞에는 서점이 열 곳 정도 있었다. 지금 학생의 수는 그때의 다섯 배이고, 경제 규모는 10배도 넘을 것이다. 하지만 서점은 단 두 곳이다. 이 두 곳의 서점조차 평소에는 파리만 날린다. 단행본을 사가는 사람이 없단다. 그런데 왜 새 책은 자꾸 받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서점을 유지하기 위해서란다. 요컨대 신학기에 교재를 파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학 앞 서점은 본래의 기능을 잃은 것이다.
서점은 과거 꽤나 괜찮은 직종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서점을 보자. ‘삼천리’(제9권 제4호 1937년 5월1일 발행)에 ‘미모의 서점 마담, 문사(文士) 노춘성(盧春城) 부인 이준숙(李俊淑)씨’란 대담이 실려 있다. 노춘성은 유명한 문인이었던 노자영(盧子泳)이다. 그의 아내인 이준숙이 서점을 경영했던 것이다.
기사는 “여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직업선상에 나선 인텔리 여점주와 인텔리 여류의 할 만한 직업”이라고 했으니, 서점은 당시의 신여성이 할 만한 직업으로 꼽혔던 것이다. 책은 아무래도 여느 상품과는 다르고, 고객 역시 이른바 배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준숙은 “다른 장사와 달리 손님들이 모두 점잖은 분들”이라고 하였다.
이준숙은 이화여자전문(梨花女子專門) 음악과를 졸업한 뒤 교사로 몇 년 근무하다가 5년 전 서점 경영에 뛰어든 ‘인텔리 여성’이었다. 서점을 하게 된 동기는 생활 곤란으로 생계를 돕자는 것이었고, 그중 서점은 이미지가 괜찮은 것, 또 자신의 성격과 취미에 맞는 것 같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남편 노자영이 문학을 본업으로 하는 까닭에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신이 음악을 전공하였으나 문학에 애착을 가졌던 것, 이런 것이 서점 경영을 결심한 이유였는데, 모 대학교수가 모 사건으로 투옥된 뒤 그 부인이 남편의 장서를 가지고 본정(本町·지금의 충무로)에서 서점을 시작하여 상상 이상 잘되었다는 체험담을 듣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서점의 명칭은 ‘미모사 서점’이고 동소문 근처 동성상업학교 옆에 있었다. 시내 중심가는 아니었지만 인텔리층이 많이 사는 성북정(城北町)과 명륜정으로 드나드는 초입이고, 또 경성제국대학을 위시한 여러 고등학교가 주위에 있어 인텔리층과 학생층을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었다.
미모사 서점은 지방통신 판매도 하고 있었다. 신문과 잡지에 광고도 하고 목록도 그해 봄 300원이나 들여 만들었다. 출판도 했다.
그해 처음 서간집 <홍장미 필 때>를 출판했는데, 주인의 말에 의하면 “그 성적이 퍽 좋은 편”이었다. 책은 주로 도쿄나 오사카 등에서 구입했고, 나우카(ナウカ)社 같은 출판사에서 재고 정리를 위해 할인할 때 좋은 책을 싸게 사들이기도 한다. 이익은 조선 책은 2할 내지 3할, 일본 책은 4, 5할 정도였다고 한다.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은 문예서적이고, 일본 잡지로는 ‘영화지우(映畵之友)’ ‘キング(킹)’ ‘日の出(해돋이)’ ‘主婦之友(주부의 벗)’ 등이, 조선 잡지로는 ‘삼천리’ ‘조광(朝光)’ ‘여성(女性)’이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하였다. 학생들 중 경성제국대학생들은 의학서적을 많이 찾지만 없는 것이 많고, 고상(高商)은 경제와 역사 분야를, 중학생들은 시집과 탐정소설을 주로 사간다고 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독자의 성별이다. 고객이 어느 쪽이 많으냐는 질문에 이준숙은 여자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이하는 직접 읽어보자.
“여성들이 독서를 하지 않는가 봐요. 학생시대에는 무엇을 열심히 공부하든 여성들도 한번 가정에 들어가면 그만 가정의 노예가 되어 바깥세상과는 인연을 끊는 모양이지요. 첫째 여자들은 경제권을 갖지 못하니, 아마 책도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없으니 남자에게 부탁하게 되겠지요, 말이 좀 딴 길로 갑니다만, 조선 여성들은 가정에만 들어가면 자기 개성은 영영 죽이고, 그저 충실한 가정부인이 되려고만 하는 듯하여요.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가정을 가진 후도 충실한 가정부인이 되는 동시에 어디까지든지 자기의 개성을 살려가며 키워가는 것이외다.
저의 이전(梨專) 동창생들 가운데에는 그때 몇 분은 졸업 후 꼭 큰 인물 되리라고 자타가 믿었던 것인데, 한번 가정에 들어간 후 그 존재조차 찾아볼 수 없어요. 그것이 무엇보다 쓸쓸하여요. 저도 졸업 당시에는 위대한 음악가가 되겠다는 양양한 야심을 가지었던 것인데 가정을 가지니 그리 마음대로 안되더구만요. 그러나 아직 그 야심만은 버릴 수 없어요. 저는 음악 외에 문학을 즐기는데, 서점을 경영한 후부터는 독서만은 더 하게 되니 그것만은 행으로 생각합니다.”
서점 주인이 여성이다 보니, 자연히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요즘은 어떤가? 서점 이야기를 하다가 딴 길로 빠졌다. 용서하시기를!
강명관 |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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