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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강연을 가끔 한다. 사람들은 모두 글을 잘 쓰고 싶어 한다. 그 이유와 동기는 참 다양하다. 자기소개서를 잘 써서 취직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책을 내고 싶은 사람도 있고, 자기 삶을 기록해 놓고 싶다는 분도 있다. 어떤 분은 글을 못 써서 직장 상사에게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고 ‘복수’하려고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수강생들은 내가 글을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고 했다. 내가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이렇다. 나는 1985년부터 2005년까지 버스 운전을 했다. 그 당시 시내버스 기사들 근무여건은 너무 열악했다. 임금이 너무 적었고 쉴 시간이 없었다. 사업주들의 욕심 때문에 운행시간이 너무 짧아 정해진 시간에 노선을 돌아오려면 난폭운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금 인상과 여유 있는 배차시간을 요구하며 1년에 한 번씩 연례행사처럼 파업을 했다.

하지만 그 파업은 사업주와 정부가 짜고 어용노조가 들러리를 서서 했던 위장 파업이었다. 그런데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 신문들은 ‘난폭운전을 일삼는 버스 기사들이 웬 파업?’ ‘이런 가뭄에 웬 파업?’ 하면서 비꼬았다. 나는 그런 신문을 보면서 분통이 터졌다. 그때만 해도 나는 신문사 기자들이 시내버스 속내를 몰라서 그렇게 썼을 거라고 생각했다. 큰 착각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수구 신문들은 다른 노동현장에서 파업을 해도 그런 식으로 기사를 썼다. 나는 글을 써서 시내버스 현장을 고발하고 싶었다. 결국 글쓰기를 배웠고, ‘한겨레’와 ‘작은책’에 글을 연재해 시내버스 기사들의 근무환경이 열악하고 시내버스 파업이 위장 파업이라는 걸 고발했다. ‘사업주도 파업하네’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글이다.

<1984년>과 <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은 글을 쓰게 된 동기로 네 가지를 들었다. 그 네 가지는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이다. 조지 오웰이 말하는 정치적 목적이란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조지 오웰은 잉글랜드 북부 노동자의 가난한 삶을 그렸고, 스페인 내전에서 스탈린을 지지하는 공산주의자들의 탄압, 그리고 파시즘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고발했다. 조지 오웰은 본래 자연주의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과 그 시대 상황 속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나는 왜 쓰는가>, 한겨레출판사, 2010)

요즘 한국은 미학적인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파시즘 시대로 돌아가 버렸다. 세월호 참사로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304명이 수장됐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경찰은 물대포로 백남기 농민을 죽여 놓고 부검해야 한다고 우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최순실은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을 만들어 재벌들에게 모두 800억~900억원을 뜯어냈다(미르는 ‘용’이라는 뜻이다. 박근혜가 용띠다).

게다가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이화여대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학칙에 없었던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경력을 면접에 반영하는 특례를 제공받아 입학하고, 출석하지 않고도, 시험을 보지 않고도, 비속어와 맞춤법도 무시하고, 표절까지 한 리포트에 B학점을 받는 특혜를 누렸다.

이렇게 권력형 비리 의혹이 백일하에 드러나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실체가 없다”고 뭉개 버린다. 게다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까지…. 탄핵당할 사유만 나열해도 끝이 없겠는데 ‘실체가 없다’고 무시해 버린다. 이런 사회가 파시즘 사회다.

이런 걸 고발하는 글쓰기는 중요하다. 그런데 파시즘 국가에서는 행동도 중요하다. 백남기 농민을 강제 부검하는 폭력엔 당장 행동으로 저항해야 한다. 조지 오웰은 이렇게 경고했다. “권력을 감시하지 않고, 권력이 부패하는 순간 저항하지 않는 대중들의 무지와 무관심 속에서 전체주의가 출현”한다.

안건모 | ‘작은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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