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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회, 시민권력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면서 이 용어에 대해 촛불 현장에서 친구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문제가 된 단어는 ‘권력’이었다. 권력이 시민의 손에 있다고 하면 괜찮을까. 우리는 둘 다 시민권력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는 얘기를 했다.

대중의 환호를 받고 등장한 권력이 대중의 원망을 사고 몰락해간 역사는 많다. 이는 ‘선한 권력’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권력 자체의 속성이 스스로를 강화하고 지배권역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권력자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권력을 쥐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커야 한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보면서도 권력 자체에 대한 두려움과 덧없음에 대권행보를 중지하고 물러나는 대권주자는 아직 없다.

권력의 흡인력은 무지막지해 보인다. 이전 권력의 비참한 말로가 뻔히 보이는데도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타인에게 미치고자 하는 권력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는다.

지난 10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7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청와대 인근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폭죽을 쏘아올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현대국가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겹으로 있다. 그러나 권력은 촘촘한 견제장치와 감시망도 뚫고 확대된다. 덜 나쁜 권력은 있어도 좋은 권력은 없는 걸까.

지난 주말에 청와대 100m 앞까지 갔다. 처음 가보는 통인동과 청운동. 오후 5시쯤 되었을까. 행렬이 마지막 진로에 세워진 차벽 앞에서 멈추고 돌아나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인도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와글와글하는 소란이 한동안 일더니 점차 “박사모는 물러가라”는 구호로 바뀌었다.

군중 사이로 태극기가 언뜻 보였다. 대한민국의 태극기가 어느새 극우단체의 전유물처럼 된 지는 오래다. 태극기가 안보와 반공과 반북의 이미지로 굳어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가까이 가봤다. 소음 사이로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태극기를 든 분의 첫마디는 “문재인은 간첩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국회가 해산되어야 한다고 했다.

촛불들의 선동에 놀아난 국회가 돈 한 푼 받은 적이 없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다는 주장은 앞서 오후 2시쯤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 앞에서도 들었다. 우리도 며칠 전에 국회 해산을 놓고 설왕설래했던 터라 그들의 국회 해산 구호는 듣기가 묘했다.

박사모 회원 등으로 여겨지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촛불행사를 방해할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낮에 세월호 천막 바로 앞에서 소란을 피웠는데 이렇게 행렬을 따라다니며 반대 구호를 외치는 그들이 놀라웠다.

그런데 내 우려는 문재인이 간첩이라는 황당한 구호 때문이 아니었다. 무모하게도 수천, 수만명의 촛불 행렬 사이로 들어와서 ‘깽판’을 놓고 있는 저분들이 혹시 다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촛불집회에서 폭행사태가 일어나면 안된다는 조바심이라기보다 그들이 어떤 주장을 하든 안위가 위협당해서는 안된다는 소박한 마음이었다.

서너 명 되는 분들이 어찌나 극성스럽게 군중들과 대거리를 하는지 무슨 난리가 난 줄 알고 헬멧을 쓴 경찰들이 일렬로 군중을 헤치고 들어와서 그들을 에워쌌다. 만약의 불상사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인데 꼭 그들만을 보호한다기보다 촛불 군중들을 폭력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하는 측면도 있으리라. 이쪽저쪽을 따지지 않고 시민의 안위에 대한 보호조치를 할 정도는 되는 경찰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보수단체 회원들은 경찰이 보호막을 쳐주자 더 기세를 올리는 것이었다. 이때도 나는 군중들이 겹으로 에워싸고 있는 경찰들의 머리 위로 뭘 집어던지면 저들이 다칠 거라는 걱정을 놓을 수가 없었다.

상당한 시간 동안 소란이 계속되었지만 군중들은 ‘박사모는 물러가라’는 말 외에는 어떤 위력행위도 하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는 유인물이나 두꺼운 종이팻말을 던지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과 같은 보폭으로 걸으면서 ‘물러가라’는 말 외에는 욕지거리도 위협도 안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권력 또는 힘이라는 것은 견제받고 통제되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제할 수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울 것이다.

전희식 | 농부·‘삶을 일깨우는 시골살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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