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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2일 가습기살균제 허위·과장 광고한 SK케미칼과 애경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2012년, 2016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공정위가 두 차례 조사에서 각각 무혐의·심의절차종료 처분으로 기업에게 면죄부를 준 결론을 7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이날 직접 브리핑에 나서 “공정위가 (지금껏) 소극적 판단을 한 것은 심각한 문제”, “피해자분들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여론에 떠밀려 재조사에 나선 모양새였지만 이전과는 180도 다른 조사 결과를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 가습기 살균제 관련 공약 (출처: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2016년 두 번째 가습기살균제 조사 과정에서 정재찬 전 공정거래위원장의 ‘사건 축소 처리’ 외압 의혹이 대표적이다. 정 전 위원장은 전원회의로 가습기살균제 허위·과장 광고 안건을 올려 심도 있게 논의하자는 소회의 주심 위원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소회의에서 사건을 마무리하게 했다.

소회의는 3명의 상임·비상임위원이 의사결정을 한다. 반면 전원회의는 9명 위원이 참석하는 공정위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논의가 더 심도 있게 이뤄진다. 정 전 위원장은 “(허위·과장 광고를 다루는) 표시광고법은 소회의 심의가 원칙이고, 전원회의에 상정하면 공소시효를 넘길 수 있다”는 이유로 전원회의 심의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12일 브리핑에서 “가습기살균제 TF가 정 전 위원장을 직접 면담한 것은 아니지만 관련 직원 1대1 면담으로 확인한 바 외압은 없었다”고 밝혔다. 외압 논란의 핵심 인물을 조사하지 않고 ‘외압 없음’ 결론을 내렸다고 자인한 셈이다. 가습기살균제 TF는 공정위 결정에 논란이 일자 사건 전반을 재검토한다는 취지로 만든 태스크포스다.

이날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은 “소회의-전원회의 안건 변경은 위원장 권한이다. 저도 소회의 안건을 전원회의로 전환한 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 전 위원장 역시 소회의나 전원회의를 선택할 권한을 가졌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설명은 절반만 맞다. 공정거래법 37조는 전원회의에서 다뤄야할 안건으로 ‘소회의가 전원회의에서 처리하도록 결정한 사항’, ‘경제적 파급효과가 중대한 사항’ 등을 열거하고 있다.

법에는 소회의에서 안건을 전원회의로 올릴 수 있다고 돼 있지만 소회의 안건을 전원회의로 올릴 때, 공정거래위원장이 이를 막을 근거는 명시돼 있지 않다. 가습기살균제 허위·과장 광고 안건은 ‘소회의가 전원회의에서 처리하도록 결정한 사항’이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파급효과가 중대한 사항’에 속한다.

법에서 찾을 수 없는 위원장의 권한은 공정위 고시(사건절차규칙)에서 등장한다. 사건절차규칙은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안건을 전원회의→소회의 혹은 소회의→전원회의로 바꿀 수 있다고 돼있다.

하지만 법률과 행정규칙이 충돌할 땐 법률은 행정규칙에 우선한다. 공정거래법은 전원회의→소회의 안건 변경에 대해 규정하지 않았고, 고시 역시 위원장이 소회의 안건이 전원회의에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명시하지도 않았다.

애당초 공정거래법이 규정한 범위를 넘어선 행정규칙을 만든 공정위가 문제다. ‘법에 없는 권한’, ‘제멋대로 해석’은 공정위가 7년 넘게 가습기살균제 광고 문제를 끌어온 또다른 이유가 아니었을까.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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