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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시는 ‘저출산’이라는 단어에 인구감소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지우는 함의가 있다는 시민 의견을 수용하여, 이를 ‘저출생’으로 바꿔 쓰자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 최근에는 ‘저출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몰상식한 사람으로 취급당한다. 그렇지만 ‘태어나는 아이’가 아니라 ‘아이 안 낳는 부모’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저출생’이라는 단어를 쓸 수는 없으니, 독자들의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인류 역사 전체로 보면 개인 단위, 가족 단위 또는 국가 단위로든, 출산을 억제하려는 의지를 품었던 기간은 극히 짧으며, 그 의지를 실현할 수 있었던 기간은 그보다 더 짧다. 근대 이전의 인구 구조는 다산다사(多産多死) 현상에 규정됐다. 기근, 전염병, 전쟁 등으로 인해 인구가 큰 폭으로 감소한 뒤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특별한 시기가 있기는 했으나, 평시의 인구 증가율도 연평균 2%를 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 증가 속도가 더뎠던 것은 주로 높은 영·유아 사망률 때문이었다. 한 부부가 평생에 걸쳐 출산하는 아이는 평균 6~7명에 달했으나, 이들 중 2~3명만이 가정을 꾸려 후손을 봤다. 그래서 국가의 인구 문제 대책도 늘 영·유아 사망률을 줄이는 데에 집중됐다. 임진왜란 직후 조선 정부가 <언해구급방(諺解救急方)> <언해태산집요(諺解胎産集要)>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 등을 발간·보급한 것도 초보적인 의술이라도 보급해 갑작스레 죽는 아이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세계시장이 형성되어 식량의 원격지 이동이 활발해지고 우두를 필두로 한 각종 백신이 널리 보급된 이후에야 영·유아 사망률은 획기적으로 줄었다. 출산 관행은 그대로인데 사망률이 줄어드니,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1910년 한반도 인구는 1300만여명이었다. 행정력이 미치지 못해 통계에서 누락된 인구가 많았던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2000만명 미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945년 해방 무렵에는 남북한 합쳐 3000만명을 넘었고, 지금은 남한만 해도 5100만여명, 북한까지 합쳐 7500만여명에 달한다. 50년마다 거의 두 배씩 인구가 급증한 셈이다.

인구가 급증하는 시대는 모든 것이 부족한 시대다. 집도, 식료품도, 의복도, 학교도, 직장도 인구 증가 속도에 맞추어 늘어나야 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보다 더 좋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사람들의 의식 안에 경쟁력 지상주의가 깊이 자리 잡은 것은 자본주의 때문이라기보다는 인구 증가 때문이었다. 둘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기는 하지만.

1960년대까지 많은 부모가 자기 자녀들이 혹독한 경쟁체제 아래 놓이게 되리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누구나 저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는 근거 없는 옛말을 믿고 구시대의 출산 관행을 답습했다. 출산율을 억제해야 한다는 범국가적 캠페인이 벌어지기 시작한 건 1960년대에 접어든 뒤였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에 이르기까지 불후의 명문 표어들을 낳으면서 진행된 ‘가족계획 운동’은 한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 캠페인이 성공하자마자 다급히 방향을 전환해야 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 감소에 대한 두려움이 국가와 사회를 엄습했다. 작년 출생아 수는 35만여명, 올해 출생아 수도 그보다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런 추세에서 현재의 병역체제가 유지된다면, 20년 후 대한민국 국군 병력은 20만명을 넘을 수 없다. 그에 앞서 보육시설과 유치원, 학교들이 차례로 문을 닫게 될 것이다. 현대 한국인들이 전 재산을 묶어두다시피한 주택 가격이 어떻게 될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바다. 역사상 처음으로, 각 개인의 선택으로 세계를 축소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런데 우리는 축소되는 세계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지난 10년간 저출산 대책에 지출한 정부 예산은 100조원이 넘는다. 그런데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갔는가? 보육시설 등 금세 과잉화할 게 뻔한 시설들을 만드는 데 쏟아붓지 않았던가? 우리 정부가 산아제한 정책을 중단한 게 1995년, 정부 내에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가 설치된 게 2005년이다. 인구 추이가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의 결과였다.

예나 지금이나 인구 감소에 대한 두려움은 개인 단위로까지는 파급되지 않는다. 개인에게는 오히려 인구 감소가 ‘압력 완화’로 느껴지는 법이다. 하지만 개인 또는 가족 단위의 선택은 또 다른 근시안적 태도를 양성한다. 혹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DNA의 자기 복제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하는데, 아주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라고 본다. 인간의 시선은 자식과 손자와 후손을 통해 먼 미래에까지 닿는다. 자식 없이 사는 친구와 대화하다가 가끔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 “나 죽은 뒤에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라는 말을 들을 때다. 자기 생존 기간까지만 내다보는 사람과 자식과 손자가 살 세상까지 걱정하는 사람의 시간관과 가치관이 같을 수는 없다. 당장 국민연금 고갈 시점과 관련해서도 자기 노후만 걱정하는 사람이 있고, 자식 세대의 부담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앞으로 자식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 사이의 가치관 차이는 사회 갈등의 한 축을 이룰 것이다.

저출산 시대가 불러올 또 하나의 위기는, 미래가 짧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시야에서 ‘영원’이 사라지면, ‘영원한 가치’에 관해 생각할 필요도 없어진다. 인구가 줄어들어 많은 시설이 비어가는 상황도 두렵지만 ‘현세밖에 없는 근시안의 시대’가 더 두렵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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